데뷔를 앞두고 건강 악화로 중도 포기한 걸그룹 연습생이 소속 연예기획사로부터 1억8000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연습생들의 불합리한 처우를 개선한다’며 도입한 표준계약서에는 건강상 이유로 포기할 경우 소속사가 손해배상 청구를 못 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아직 현장은 바뀌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A 씨(21·여)는 지난해 6월 한 중소 기획사와 연습생 계약을 맺었다. A 씨는 1년 넘게 하루 10시간이 넘는 고된 연습을 하다가 성대결절과 무릎관절 염증 등 질병을 얻었다고 한다. 우울증과 불안장애 진단도 받았다. A 씨는 “기획사 관계자가 막말과 욕설을 했고, 계란과 초코바만 먹고 하루 종일 연습하는 날도 많았다”고 주장했다. 결국 A 씨는 데뷔를 한 달가량 앞둔 7월 소속사 측에 “포기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소속사는 10월 A 씨에게 1억80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트레이닝·앨범제작·숙식비 7000만 원, 직원 급여 3000만 원, 정신적 손해로 인한 위자료 5000만 원 등의 명목이었다. A 씨는 동료 연습생 8명과 한 팀을 이뤄 1년 1개월간 ‘무임금’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소속사 직원 2명의 지도를 받았다. 아파트에서 합숙 생활을 한 기간은 두 달 남짓이다. A 씨는 “터무니없는 액수”라며 “9명을 1년간 훈련시킨 비용을 모두 내게 청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소속사가 A 씨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근거는 지난해 6월 A 씨와 체결한 ‘연습생 계약서’였다. 계약서에는 연습생의 사정으로 데뷔 등 계약 내용을 이행하지 못하면 소속사가 투자한 모든 비용을 배상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A 씨의 경우 각종 진단서 등 의료기록을 확보하고 있어 표준계약서대로라면 면책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표준계약서 도입은 권고사항에 불과하다.
공정위는 올 3월 대형 연예기획사 6곳에 대해 연습생 계약서상 불공정 약관을 시정하라는 조치를 내려 이 중 3곳이 표준계약서를 도입했다. 하지만 일부 중소형 기획사에선 불공정 관행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기획사 관계자는 “A 씨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며 객관적인 근거를 토대로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곽준호 변호사는 “소속사가 자의적으로 만든 연습생 계약서를 강요해도 당장 데뷔를 하고 싶은 연습생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서명해야 하는 실정”이라며 “표준계약서를 의무화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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