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살구·생눈깔·눈탱이’ SNS서 일상 언어가 된 마약 은어들

  • 뉴스1
  • 입력 2019년 2월 23일 16시 05분


“버젓이 SNS서 마약 은어 난무…비정상적 상황”

일명 물뽕(G.H.B)를 트위터에 검색했을 때 나오는 게시글 © 뉴스1
일명 물뽕(G.H.B)를 트위터에 검색했을 때 나오는 게시글 © 뉴스1
“가스배달꾼을 통해 던지는 건 개살구가 많다”, “제대로 된 산타를 통해서 잡아야 눈탱이도 안 맞는다.”

지난 20일 서울 모처에서 기자가 만난 전(前) 마약 거래상 A씨(40)는 의미만 대강 알 수 있는 한 문장을 건넸다. 은밀한 거래라고 짐작은 할 수 있었지만, 문장만 봐서는 정확한 의미까지는 알기 쉽지 않았다.

◇10년 전엔 마약 은어들 접하기 어려웠지만…

그는 당시에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마약거래상들끼리 쓰던 은어라고 했다. 기자에게 건넸던 문장에 단어를 풀면 이렇다. ‘가스배달꾼’은 마약을 파는 판매상에게 마약을 공급하는 사람을 뜻한다. 일종의 마약 도매상으로 마약 거래 사슬의 첫부분에 위치한다.

‘던지기’란 마약상이 특정 장소에 마약을 숨겨두고 구매자가 찾아가게끔 위치를 설명하거나, 사진을 찍어 전송하는 거래 방식이다. 다만 ‘던지기’ 하는 장소는 시간이 흐르면서 방법이 변했다고 한다. 10여년 전에는 거래상들이 공중전화를 주로 이용했지만, CCTV 등 감시망이 많아지면서 상가 셔터 밑, 에어컨 실외기 밑, 버스정류장 벤치 틈등 사각지대를 선호한다고 했다.

‘산타’는 마약을 나눠주는 사람을 뜻했다. 크리스마스 때 선물을 나눠주는 산타처럼 마약투여자들에게 마약은 선물인 만큼 그런 용어를 쓴다고 했다. ‘눈탱이 맞다’는 마약 거래대금을 줬는데 마약을 받지 못한 상황을 설명하는 은어다.

A씨는 마약을 투약하진 않았지만 마약 거래 중간상으로서 나름 중책을 맡았었다고 한다. 하지만 수사기관에 적발된 뒤 징역형을 살았고, 이제 마약 세계와는 완전히 인연을 끊었다고 했다.

A씨는 일명 물뽕(G.H.B)으로 불거진 ‘클럽 버닝썬’ 사태와 마약반 형사의 얘기를 다룬 영화 ‘극한직업’ 얘기를 꺼내기도 했다. ‘마약 세계와 절연하기 어렵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어느 약쟁이가 기자를 만나서 얼굴을 드러내고 마약 이야기를 꺼내냐”며 오히려 되물었다.

그는 마약 거래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메신저를 통해 거래되는 현 상황을 비정상적이라고 봤다. 특히 마약 거래 관련 은어들이 SNS나 메신저에서 마치 일상언어처럼 통용되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10여년 전만해도 경찰, 마약거래상 정도만 알던 마약 은어들이 버젓이 SNS 등에 오르내고 있어서다.

실제 마약 은어를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등 SNS에는 구매를 유도하는 글도 적지않다. 알선글 게시자들은 텔레그램이나 카카오톡 아이디를 소개하며 구매를 유도하고 있었다. “정품만 취급한다”며 사용 후기 동영상을 보내주겠다는 계정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SNS 거래는 대부분 저급 마약이거나 사기꾼·야당(수사협조자) 일수도”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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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를 통해 마약을 거래하는 방식은 약 4~5년 전부터 대중화됐다고 한다. 텔레그램이나 유튜브 등에 아이디를 남기면, 접속한 구매 희망자와 채팅을 주고받다 방식을 이용한다. 다만 이런 거래는 판매자, 구매자 10명 가운데 8~9명은 사기꾼이라 마약과 돈만 받고 잠수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피해를 입어도 사기로 수사기관에 알릴 수도 없는 게 주요 이유”라며 “은어로 야당이라고 부르는 수사 협조자일 가능성도 있어 제대로 된 마약상은 SNS 거래를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또 마약에도 등급이 있어 “랩(마약을 만드는 곳)에서 제대로 만들어 진 것은 SNS에서 쉽게 유통되지 않을 것이고, 현장거래는 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의 마약이 SNS서 유통된다고 생각한다”며 “SNS에서 기존 마약 인맥에 의존하지 않고도 판매가 수월해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상 파고든 마약…경찰 “SNS서 호기심으로 접근해도 엄벌”

이제 마약거래가 은밀한 곳에서만 일어나지 않는 만큼, 마약은 더욱 일반 시민의 일상속으로 파고든 상황이다. 그만큼 정보가 많다보니 범죄라는 자각 없이 판매하거나 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마약을 쉽게 사고팔 수 있게 되면서 죄의식이 희미해졌고 사용자도 급증하고 있다는 뜻이다.

또 판매상이나 구매자 모두 보안이 철저한 해외 앱을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동안 추적이 불가능한 암호화폐가 유행하다 암호화폐 거래 실명제를 시행한 후에야 잠잠해졌다.

SNS를 통한 거래가 늘면서 마약 수사는 난관에 봉착했다. 대검찰청 등에 따르면 최근 5년 새 마약류 사범 단속실적은 Δ2014년 9984명 Δ2015년 1만1916명 Δ2016년 1만4124명 Δ2017년 1만4123명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다 지난해 1만2613명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지난해 마약 밀수입 압수량은 298.3kg으로 전년(35.2kg)보다 8.5배가량 급증했다.

경찰 관계자는 “마약은 소지·유통·투약·판매 등 관련한 모든 게 범죄에 해당되고 SNS에서 단순 호기심으로 접근했다고 해도 엄벌에 처해진다”며 “범죄 첩보만으로 마약 사범을 잡기에는 힘든 상황이 된 만큼, 마약 유통경로 등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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