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 아닌 불편단체”… 경찰 내부서 터져나온 “협력단체 해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9일 03시 00분


버닝썬 유착의혹 계기로 폐지 목소리

‘(협력단체는) 협력이 아니라 불편의 대상일 뿐입니다.’

14일 경찰 내부 통신망에 ‘이제는 경찰 협력단체부터 해체합시다’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작성자인 대구지방경찰청 소속 A 경위는 게시글에서 “버닝썬 사태를 보면서 걱정이 앞서는 부분이 경찰 협력단체”라고 썼다. 이어 “교통단속을 하면서 협력단체 회원들과 얼굴 붉히는 일이 많았다”며 “유착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협력단체와 결별을 이번 기회에 선언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근 ‘버닝썬’을 비롯해 서울 강남 클럽들과 경찰의 유착 의혹이 불거진 것을 계기로 현직 경찰들 사이에서도 경찰 협력단체를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버닝썬의 모기업 이사가 강남경찰서 경찰발전위원으로 활동한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었다.

협력단체는 치안과 경찰 행정의 발전을 위해 지역사회와 협력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자문단체다. 1999년 ‘행정발전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해 2009년 명칭이 바뀐 ‘경찰발전위원회(경발위)’가 대표적이다. 지역 주민들의 의견 수렴 창구로 만든 ‘생활안전협의회’도 대표적인 경찰 협력단체다.

하지만 이런 취지와 달리 협력단체가 실제로 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지역 사업가들이 구성원이 되는 경우가 많아 주민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지역 치안과제 발굴 등을 위한 의견 청취를 명분으로 모임을 갖지만 대부분 술자리 친목이나 사교모임으로 변질되면서 수사기관 민원창구가 되고 만다는 지적도 있다.

2013년 광주에선 음주 단속에 걸려 면허가 정지된 전력이 있던 경발위원이 음주운전을 하다 사망 사고를 냈는데도 경찰이 불구속 입건을 해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2015년 경기 지역의 한 지구대 경찰은 생활안전협의회 위원장을 지낸 이모 씨에게서 청탁을 받고 이 씨에게 소송을 건 상대방에 대한 ‘표적 음주단속’을 해 견책처분을 받은 일도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A 경위의 글에는 ‘늙은 양반들 접대용 아니냐’, ‘협력단체 가입하는 순간 그 집 막냇동생 된다’는 등 협력단체 폐지를 주장하는 댓글이 100건 넘게 달렸다. ‘교통단속을 하다 보면 먼저 내미는 것이 신분증이 아니라 협력단체 회원증’이라는 단속 경찰의 경험담도 올랐다.

A 경위의 게시글로 조직 내부에서 협력단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경찰청 경무담당관실은 “국민이 원하는 투명하고 역량 있는 경찰 협력단체 구성을 위해 위원 적격 여부를 심사하는 등 일제점검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검찰은 시민들이 법무와 검찰 업무를 돕는 취지로 ‘범죄예방위원회’를 운영해오다 청탁 등으로 문제가 되자 2014년부터 ‘법사랑위원회’를 만들고 봉사활동 중심의 협력단체를 운영 중이다. 하지만 2019년 회삿돈 약 50억 원을 횡령·배임한 혐의로 경찰이 기소의견을 달아 송치한 법사랑위원을 검찰이 무혐의 처분해 봐주기 논란이 제기되는 등 잡음이 적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수사기관의 민간 협력단체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관련 규정을 엄격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종술 동의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시민 의견을 경찰에 전달하는 통로로서 협력단체는 필요하지만 대부분 관내 사업가나 이른바 유지들이 참여하고 길게는 10년씩 연임하는 경우도 있어 유착이 쉽다”며 “수사기관 위촉이 아니라 공개모집 등의 방식을 통해 투명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자현 zion37@donga.com·김소영 기자
#경찰#버닝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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