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 정준영 등 한류를 이끌던 스타들의 몰락이 안타깝다. 아직은 젊은, 한창 피어나던 이들이 왜 차마 입에 올리기도 힘든 행동들을 했을까.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이들의 행태에 한숨짓기에 앞서 우리 사회는 과연 이들에게 제대로 된 ‘직업윤리’를 가르쳤는지 의문이다.
이 칼럼에서 여러 번 언급했지만 좋은 직업은 ‘생계유지, 사회적 기여, 자아실현’이란 삼박자가 잘 맞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책임감, 도덕성, 사명감 등이 요구되는데, 그런 마음이나 사회적 규범을 직업윤리라고 한다.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한다’는 내용의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의료인의 윤리강령이듯 직업마다 각각의 규범이 있다.
윤리란 말이 고리타분하게 들릴 수 있다. 지킬 거 다 지키면서 어떻게 돈을 버냐는 인식도 크다. 하지만 이제 직업윤리 준수여부는 개인을 떠나 조직의 흥망과도 직결되는 시대가 됐다. 승리, 정준영 파문으로 이들의 소속사가 휘청거릴 정도다. 회사의 위험관리에 절대적 요인이 된 셈이다. 같은 업계에서도 회사 대표가 어린 아이돌들과 자주 식사하면서 예절이나 생활태도 등을 가르친다고 소문난 회사는 탈선하는 케이스가 훨씬 드물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직업윤리 교육의 중요성을 잘 말해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몇 해 전 체육계가 부조리 문제로 시끄러울 때 만났던 한 체육인이 그 원인을 ‘못 배운 탓’으로 돌려 놀란 기억이 있다. “운동하느라 거의 학교수업을 빼먹어 직업이 뭔지, 윤리가 뭔지 들어본 적도 없다”며 “그러다보니 의리도 사라지고 오직 돈만 아는 분위기가 됐다”는 설명이었다. 비록 일부에 해당되고, 농담조의 말이었지만 꽤나 충격적이었던 얘기였다.
4차 산업혁명시대로 접어들면 직업윤리는 더욱 중요해진다. 세계가 하나로, 빠르게 연결되는 사회인만큼 문제가 생기면 그 여파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커진다. 인공지능(AI)이 장착된 로봇을 만드는 연구자의 직업윤리가 잘못됐다면 미래 어떤 세상이 올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선진국마다 이공대 학생들에게 공학윤리 교육을 점점 더 강화하는 이유이다.
인사청문회에서 장관 후보를 검증할 때 정책적 능력보다 청렴성 등 공직윤리를 먼저 따지는 것도 그런 의미다. 공직윤리가 희박한 사람은 국익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경향이 큰 탓이다. 특히 이 점은 우리의 중요한 전통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직업의 역사를 다룬 ‘직업발달사’(김병숙)에서는 ‘고려사’와 ‘연려실기술’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대상으로 직업윤리를 분석했는데, 고려와 조선시대 공직자들은 청렴결백, 바른 언행, 공평한 일처리, 준법, 청탁 배제, 인재 등용 능력 등이 주요 덕목이었다고 소개했다. 요즘 요구되는 공직 윤리와 조금도 다름없다.
직업윤리는 학교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지속적으로 강조되어야 한다. 세계적인 첼리스트 장한나의 스승인 첼로 거장 로스트로포비치는 제자들에게 늘 “너희는 뛰어난 재능을 받았으니 세상을 위한 좋은 일에 써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승리, 정준영이 이런 말을 듣고 자랐어도 그랬을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