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남편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고유정(36·수감 중)이 범행 80일째인 12일 법정에 처음 출석했다. 고유정 측이 우발적 범행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자 분노한 시민들은 야유와 고성을 보냈다.
제주지법 형사2부(부장판사 정봉기) 심리로 이날 오전 10시부터 1시간 반 동안 열린 재판에서 고유정은 수감번호 38번이 쓰인 연녹색 수의를 입고 201호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여 방청석에선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고유정이 등장하자 일부 방청객은 “살인마”라고 외치며 분노를 표출했다.
고유정 측은 사건이 발생한 원인을 성 에너지가 강한 피해자 측으로 돌렸다. 고유정 측 변호인은 “피해자가 자신의 무리한 성적 요구를 피고인이 거부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이 비극을 낳게 된 단초”라고 밝혔다. 일부 방청객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고함을 쳤다.
휴대전화와 자택 컴퓨터를 이용해 ‘뼈 강도’, ‘뼈의 무게’, ‘니코틴 치사량’ ‘졸피뎀(수면제)’ 등을 검색한 것도 범행과 연관이 없다고 주장했다. 졸피뎀은 버닝썬 사건을, 니코틴 치사량은 현 남편을 위해 전자담배를, 뼈 무게 등은 현 남편 보양식인 감자탕 등을 알아보다 연관 검색어로 찾아본 것이라고 진술했다. 검찰 측은 “(고유정이) 포털 등에 직접 입력해 검색한 것”이라며 “이불뿐만 아니라 담요에서도 피해자의 혈흔이 나왔고 졸피뎀이 검출됐다”고 반박했다.
방청객이 몰리면서 제주지법 사상 처음으로 선착순으로 방청권을 배부하면서 이날 오전 5시 30분부터 법원에 길게 줄을 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이례적으로 입석 10석까지 허용돼 방청석 77석이 가득 찼다.
고유정은 이름, 주소 등을 묻는 재판장의 질문에 고개를 숙이고 웅얼거리며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답했다. 재판장이 ‘국민참여재판을 원하느냐’고 묻자 처음엔 고개를 가로저었다가 작은 목소리로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검찰이 공소사실을 읽자 고개를 숙인 채 미동도 않다가 변호인의 진술엔 어깨를 움직이며 서너 차례 흐느끼는 모습을 보였다.
유족들은 “한 편의 소설을 본 것 같다”며 착잡한 심정을 나타냈다. 피해자 측 변호인 강문혁 변호사는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점을 악용해 터무니없는 진술을 한 부분에 대해 응당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 뒤 한 시민은 호송차량에 오르던 고유정의 머리채를 잡기도 했다. 다음 재판은 다음 달 2일 오후 2시 열린다.
한편 고유정은 의붓아들 사망과 관련해 “현 남편 A 씨(37)가 자신을 범인으로 몰고 있다”며 지난 달 22일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청주=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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