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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 이모씨(56)가 1994년 처제를 살해한 범행 때부터 경찰에 붙잡힌 뒤까지 증거인멸을 시도하며 ‘완전범죄’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25일 <뉴스1>이 확보한 재판 기록 등에 따르면 이씨는 1994년 1월13일 청주 자신의 집에서 처제 A씨(당시 19)에게 수면제를 먹여 성폭행하고 둔기로 때려 살해했다.
그는 숨진 A씨의 옷과 집에 있던 스타킹 등을 이용해 시신을 묶거나 감싸 유모차로 집에서 880m가량 떨어진 한 철물점 야적장에 유기했다.
A씨의 몸에서 반항흔이 나오지 않은 점으로 미뤄 면식범의 범행으로 추정한 경찰은 가족을 조사하던 중 수상한 낌새를 보이는 이씨를 붙잡았다.
항소심 판결문에는 이씨가 범행 때부터 경찰에 붙잡힌 이후에도 갖은 방법으로 ‘증거인멸’을 시도한 여러 정황이 담겼다.
이런 점들 때문인지 처제 사건 판결문들에는 ‘계획적이고 치밀하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항소심 판결문을 보면 경찰에 붙잡히기 전 이씨는 욕실에 바가지로 물을 뿌려 혈흔 등을 없애는 등 집안을 청소했다.
이 때문에 경찰은 둔기 폭행이 수차례 이뤄진 이씨의 집안 어디에서도 범행의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는 혈흔을 찾지 못했다.
이씨를 검거하고 여러 차례 집안을 다시 감식한 끝에야 가까스로 욕실 출입문 손잡이 등에서 미량의 혈흔을 가까스로 발견할 수 있었다.
범행의 결정적인 증거가 확보된 경찰은 이씨의 범행을 확신했다. 하지만 그는 검거된 이후에도 범행을 감추기 위한 노력(?)을 끈질기게 이어갔다.
경찰에 붙잡혀 구속되고 첫 면회 온 어머니에게 ‘변호사를 빨리 선임해 달라’고 요구했다.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거나 억울하게 구속됐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씨는 며칠 뒤 다시 면회를 온 어머니에게 ‘집 살림살이 중 태울 수 있는 것은 장판까지 모두 태워 달라’며 자신도 모르게 남아 있을 범행의 흔적을 없애려 시도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씨의 이런한 행동이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를 증거물을 없애 버리기 위해 살림살이를 태워 달라고 부탁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간다’고 지적했다.
법정에서 그는 범행에 사용된 수면제를 구입·보관한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거나 경찰의 고문 등으로 허위자백을 했다는 등 직접 증거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며 무죄를 주장하기도 했다.
이씨는 사형을 면하려 부단히 노력하기도 했다. 그는 1심 사형부터 대법원에서 무기징역 확정까지 모두 5번의 재판을 받았다.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자 이씨는 항소심에서 혐의 부인과 함께 양형부당을 주장했다. ‘사형은 과하다’는 주장이었다.
항소심에서도 사형을 선고받은 이씨는 또다시 같은 이유로 대법원 상고했고, 주장 일부가 받아들여지며 사형은 면하게 됐다.
당시 대법원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하고 범행한 것인지 아니면 강간만 할 생각으로 범행했는데 순간적인 상황의 변화로 살인의 범행에까지 이어졌던 것인지 여부가 면밀히 심리·확정된 다음에 양형을 정해야 옳다”며 원심판결을 파기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 역시 “피해자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약효가 나타나기도 전에 친구와 약속이 있다며 떠나려 하자 이를 저지하면서 강간을 저지르고 그 과정에서 반항하자 살해까지 한 것이 인정된다”며 살해를 우발적 범행으로 판단해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무기징역도 억울했던 이씨는 파기환송심 결과에 불복해 재차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고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결정한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이씨를 검거해 조사했던 김시근 전 형사는 <뉴스1>과 통화에서 “루미놀 검사에서 방안 어디에서도 혈흔이 나오지 않는 등 초범의 짓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범행이 치밀하고 계획적이었다”고 기억했다.
이어 “이씨를 조사할 때 선배 형사들에게 화성사건과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는 말을 자주 한 기억이 있다”며 “많은 아쉬움이 있지만 혈액형 판별만 가능할 정도의 당시 과학수사 수준 등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청주=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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