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함께 소주잔 나누던 아들… 난 친구를 잃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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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생 행사장 붕괴 참사]
故 김정훈씨 부친 병연씨의 눈물

경북 경주시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 사고로 숨진 부산외국어대 새내기 김정훈 씨의 빈소가 경기 고양시 인제대 일산백병원에 마련됐다. 20일 김 씨의 아버지 김병연 씨가 성경을 들고 아들을 위해 기도를 하고 있다. 고양=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경북 경주시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 사고로 숨진 부산외국어대 새내기 김정훈 씨의 빈소가 경기 고양시 인제대 일산백병원에 마련됐다. 20일 김 씨의 아버지 김병연 씨가 성경을 들고 아들을 위해 기도를 하고 있다. 고양=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바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김병연 씨(53)에게는 그래도 한 가지 낙이 있었다. 아내와 딸이 잠든 시간. 김 씨는 아들을 집 근처 단골 부대찌개 식당으로 불러내곤 했다. 김 씨가 소주를 잔에 따르면 아들 정훈 씨(20)가 국자로 앞 접시에 찌개를 나눠 떴다. 부자(父子)는 소주잔을 맞부딪쳤다. “니 저녁에 ‘바비’ 밥은 줬나. 오늘은 일이 쪼매 많아서 숨이 차더라.” “줬어요. 어리광이 부쩍 늘었어요. 요새 어머니가 아버지 걱정 많이 하세요. 수척해졌다고.” 바비는 김 씨 가족이 키우는 강아지다. 김 씨는 친구처럼 넋두리를 들어주는 아들이 대견했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짠했다.

아들 정훈 씨는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갑상샘기능저하 증세를 보였다. 의사는 “호르몬이 잘 생성되지 않아 늘 피곤하고 추위를 타는 병이다. 영양분이 몸에 잘 흡수되지 않아 키가 안 클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아버지는 고개를 떨궜다. 자신과 같은 병이었다. 의사는 “유전”이라고 덧붙였다.

병 탓인지 정훈 씨는 김 씨처럼 키가 작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키가 158cm. 중고등학생 시절 반 학생들이 키를 재면 가장 작은 1번은 늘 정훈 씨 차지였다. 작은 키는 때론 상처가 됐다. 친구들 눈을 의식해 등·하굣길을 인적이 드문 곳으로 빙 돌아다닐 정도였다.

정훈 씨는 축구광이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경기는 빼놓지 않고 ‘본방사수’했고 유학도 꿈꿨다. 체육학과에 진학해 스포츠경영을 전공하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실기시험 점수가 좋지 않았다. 신체조건 탓이었다. 결국 꿈을 접고 부산외국어대 미얀마어학과에 지원해 합격했다.

아버지 김 씨는 이따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 내 잘못이야. 아빠 조상 탓. 내가 몹쓸 병을 물려줘서….” 그럴 때면 정훈 씨는 쾌활하게 맞받아쳤다. “에이, 그게 왜 아버지 탓이에요. 그런데 키 높이 구두를 신으려 하는데, 신고 있으면 큰데 벗으면 푹 작아져요. 어떡하지?” 정훈 씨가 자기 말에 깔깔깔 웃는 동안 김 씨는 눈물을 훔쳤다.

17일 신입생 환영회에 참석한 정훈 씨는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사고로 현장에서 숨졌다.

가족들은 정훈 씨의 시신을 19일 울산에서 경기 파주 집과 가까운 고양시 인제대 일산백병원 장례식장으로 옮겼다. 정훈 씨의 누나 희영 씨(26)는 동생의 영정 앞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며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친구를 잃었네, 나는 친구를 잃었네.”

고양=박가영 기자 bbacga@donga.com
#신입생 행사장 붕괴#부산외국어대학교#마우나오션리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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