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린 어른 끌어올리는 10대들… 한가하게 통화하는 선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9일 03시 00분


[세월호 참사/침몰 당시 구조장면]
9분 45초분량 해경 동영상 보니



28일 해양경찰청이 뒤늦게 공개한 세월호 침몰 당시 동영상에는 구조 과정의 급박한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특히 그동안 사진으로만 확인됐던 선장 이준석 씨(69) 등 선원들의 탈출 모습이 고스란히 찍혔다. 배를 버리고 경비정에 몸을 싣는 선원들의 표정에서는 남은 승객들에 대한 걱정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스스로 ‘퇴선’을 결정한 승객들은 구명조끼만 믿고 바다로 몸을 던져야 했다. 또 물속에서 얼굴만 내놓은 채 고무보트 옆줄에 매달려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선장의 퇴선 명령만 기다리던 300여 명의 승객은 세월호가 뱃머리만 남긴 채 바닷속으로 잠길 때까지 끝내 보이지 않았다.

○ 경비정 도착 당시 세월호 이미 50도 기울어

16일 오전 9시 28분 목포해양경찰서 경비정 123정이 세월호 구조를 위해 긴급 출동했다. 안개 때문에 멀리 세월호 모습은 흐릿하게 보였다.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세월호의 모습이 선명해졌다. 배는 이미 50도 가까이 기운 상태. 하지만 선체 위에는 단 한 사람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500명 가까운 승객과 승무원이 탄 여객선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단지 배 앞머리에 실린 컨테이너 10여 개가 어지럽게 흩어진 모습에서 ‘침몰’을 알 수 있었다.

첫 구조가 이뤄진 것은 오전 9시 39분. 해경 3명을 태운 보트가 세월호 3층 출입구 쪽으로 다가가자 4명이 손을 흔들어 구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들은 승객이 아니었다. 3등 기관사 이수진 씨(25·여) 등 세월호 기관부 선원들이었다. 이들이 경비정으로 옮겨 탄 뒤에야 승객에 대한 구조가 시작됐다. 기울어가는 배를 이기지 못한 승객들은 구명조끼만 입은 채 하나둘 바다 위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보트를 향해 헤엄쳤다.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찬 보트는 어쩔 수 없이 이들을 바다 위에 남긴 채 경비정으로 갔다. 오전 9시 50분 승객을 가득 태운 보트 한 대가 다시 경비정에 도착했다. 몸은 바닷속에 있고 얼굴만 간신히 위로 내놓은 승객 4명이 보트 양쪽에 매달려 있었다. 안산 단원고 학생으로 보이는 10대 남녀 4명은 먼저 경비정에 오르지 않고 매달린 어른들을 함께 끌어올렸다.

○ 더딘 승객 구조… 승무원 구조는 신속

승객 구조는 더디기만 했다. 그러나 선원들 구조는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오전 9시 46분 세월호 5층 측면이 수면 위 2, 3m까지 기운 상태. 해경은 5층 맨 앞 조타실에 경비정을 댔다. 조타실에는 선장 이 씨를 비롯해 3등 항해사 박한결 씨(26·여) 등 여러 명의 선원이 있었다. 이들은 해경의 도움을 받아 차례로 경비정에 몸을 실었다. 선장 이 씨는 속옷 차림이었다. 행여나 발을 헛디뎌 바다에 빠질까 극도로 조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승객들을 걱정하는 표정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선원들의 이상한 행동은 또 있었다. 해경들에 의해 구조돼 경비정으로 옮겨진 1등 항해사 강모 씨. 오전 10시 21분 그는 승객을 태운 보트가 경비정을 오가는데도 이들을 끌어올리는 등 구조를 돕지 않았다. 오히려 느릿느릿 선상을 걸으며 휴대전화로 어딘가 통화를 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찍혔다. 선원들 중에는 유일하게 조타수 오용석 씨(58)가 구조활동에 동참한 것이 확인됐다. 오 씨는 해경들을 도와 선실 유리창을 깨거나 바다에 빠진 승객들을 끌어올렸다.

그 사이에도 세월호는 속절없이 기울어갔다. 오전 10시 17분 배는 90도 이상 기울어 좌현 전체가 물속에 잠겼다. 간혹 물속에서 헤엄쳐 나오거나 우현에서 헬기를 통해 구조된 승객의 모습만 확인됐다. 그로부터 약 22분 뒤 세월호는 선수 일부만 남기고 결국 침몰했다. 300명 넘는 승객은 구조를 바라는 손길 한 번 내밀지 못했다.

○ 카메라에 담지 못한 선원들의 모습

배와 승객을 버리고 경비정으로 탈출한 선장 이 씨 등 선원 15명은 오전 10시 30분경 근처에 있던 관공선(급수선) 진도 707호(30t) 등 두 척의 배로 옮겼다. 진도 707호는 오전 11시 12분 사고 해역에서 24km 떨어진 팽목항에 도착했다. 이 씨 등 선원 12명은 진도읍에 있는 병원으로, 3등 항해사 박 씨 등 3명은 진도실내체육관으로 갔다. 이 씨와 같은 병실에 있었던 승객 강병기 씨(41·화물기사)는 “진도 707호에서 작업복·제복을 입고 있던 사람 4명이 어느새 사복으로 갈아입어 의아했다”며 “병원에 온 사람들 중 속옷 차림은 아무도 없었다”고 말했다. 또 “선장이 젖은 지폐를 말릴 때 짙은 색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선장 이 씨 등 12명은 경상으로 분류돼 16일 오후 3시경 진도실내체육관으로 이송됐다. 이곳에서 119대원이 파악한 선원 6명의 행선지는 ‘귀가’(안산)로 분류됐다. 해남소방서는 선장 이 씨 등 6명이 “집에 가겠다”고 밝힌 것인지, 단체 이동버스를 타 귀가로 구분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성호 starsky@donga.com / 목포=이형주 기자
#세월호#해양경찰청#경비정#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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