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발생 17일째인 2일. 세월호가 침몰한 사고 지점에는 부표 2개가 덩그러니 떠 있다. 바로 옆에 정박한 바지선 ‘언딘리베로호’ 위에는 실종자 수색작업에 투입될 잠수사들이 물결치는 바다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조류가 가장 강하다는 사리의 마지막 날. 고갈된 체력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바닷속 환경 때문에 베테랑 잠수사들도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다.
사고 직후 바다를 찾은 민간 잠수사 권용 해난구조대(SSU) 전우회 부회장은 “조류 1노트(시속 1.8km) 이상이면 잠수가 불가능한데 이곳은 반나절을 제외하고 늘 4∼5노트 이상의 조류가 흐르는 위험한 지역”이라고 말했다. 거기에 40m 안팎의 수심에서 작업하다 보니 잠수병의 위험도 도사린다. 1일과 2일에는 민간 잠수사 2명이 잠수병 증세로 의식을 잃기도 했다. 그럼에도 잠수사들은 인명을 구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바다에 다시 몸을 던진다.
이번 사고 현장에서 민간 잠수사의 활약이 많은 주목을 받았다. 생계를 제쳐두고 한걸음에 사고 현장에 달려온 이들, 민간 잠수사의 세계를 살펴본다.
진도로 달려온 민간 잠수사들
해경에 따르면 지난달 29일까지 바닷속 수색작업은 413차례 진행됐다. 이 중 민간 잠수사가 투입된 수색작업은 14차례이다. 여기에 투입된 민간 잠수사는 연인원 기준 27명에 불과하다. 실제로 바다 밑에 들어가 시신을 수습하고 가이드라인을 설치한 민간 잠수사는 이처럼 소수에 불과하다. 다른 민간 잠수사들은 배를 몰거나 장비를 설치하는 등의 작업을 통해 구조작업에 참여한다. 이번에도 하루에 적게는 12명(지난달 25일)에서 많게는 297명(지난달 19일)이 헌신적으로 작업을 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국내 민간 잠수사는 약 8000명. 국가기술자격법에서 인정하는 공인 잠수사는 잠수산업기사와 잠수기능사로 각각 603명, 4862명이 있다. 홍성훈 한국잠수협회 사무국장은 “이 자격이 있어야 수중용접이나 수중폭파, 구조 및 선박 인양 등을 하는 전문건설업 허가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민간 잠수업체는 450여 곳으로 추정된다.
스쿠버 자격증을 취득한 민간 잠수사는 4000명 정도로 해수부는 추산한다. 국내 한국잠수협회, 대한수중·핀수영협회 등이나 미국 수중지도자협회(NAUI), 국제스쿠버학교(SSI) 등 민간단체들에서 스쿠버 자격증을 발급한다.
수중용접은 잠수사의 몫
최상진 씨(47)는 1994년부터 현대중공업에서 잠수사로 근무하고 있다. 선박 동력 장치에 붙어 있는 따개비를 제거하고 도장 상태를 점검한다. 독에 물이 새지 않는지 점검하고 선박 용접 및 수리도 한다. 최 씨는 “겨울에 섭씨 7∼9도 찬물에서 밤까지 작업을 하다 보면 힘에 부쳐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나’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현대중공업그룹에는 11명의 잠수사가 있다.
스쿠버 강사였던 이주헌 씨(39)는 스쿠버가 ‘돈이 드는 레저’인 만큼 경기에 따라 부침이 심해 아예 잠수기능사 자격을 따고 건설회사에 취직했다. 교각을 건설할 때 수중에서 콘크리트를 붓거나 방파제 바닥을 평평하게 만드는 작업, 케이블 점검 등을 한다.
이 씨는 7년 전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아찔한 경험을 했다. 해양조사장비를 설치하러 바닷속으로 25m쯤 내려갔을 때 장비에 이상이 생겨 공기 공급이 차단됐다. 그는 “‘이제 죽는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지내온 인생이 영화처럼 스쳐지나갔다”며 “정신을 잃을 때쯤 공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정준상 서울산업잠수학원장은 “잠수사들은 수가 많지 않고 특수한 일을 하다 보니 월급이 600만 원가량으로 높은 편”이라며 “경력과 해양학, 토목학, 컴퓨터설계 등 전문지식이 더해지면 1000만 원을 넘기도 한다”고 말했다.
“더 일찍 꺼내주지 못해 미안해”
김형춘 대표(50)는 1990년대 구난 및 수중공사 업체인 대한수중개발을 차린 이후 물속에서 건진 시신만 100여 구, 배에서 구출한 사람은 7명이다.
1990년대 말 김 대표는 전남 병풍도 인근에서 전복된 어선에서 누군가가 벽을 때리는 소리를 들었다. 선원 한 명이 에어포켓 덕분에 목숨을 잃지 않았다. 나머지 3, 4명은 이미 실종됐다. 배 안에서 김 대표는 기름을 뒤집어쓴 50대 남성을 발견했다. 김 대표는 “그가 육지에 나와 한 첫마디는 ‘담배 한 대 피우고 싶다’였다”며 “내연녀를 차에 태운 뒤 차를 바다에 빠뜨려 살해한 남성의 연락을 받아 시신을 꺼내온 씁쓸한 경험도 했다”고 전했다.
박희준 씨(48)는 경기 남양주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면서 부업으로 스쿠버를 가르치고 인명구조 봉사활동을 한다. 17일에는 참사 현장에서 가이드라인 설치를 도왔다. 그는 2008년 강원 정선 계곡에서 실종됐던 남자 중학생의 시신을 수습했다. 박 씨는 “5m 수심 돌 사이에 끼어 있던 시신을 꺼내면서 ‘좀더 일찍 꺼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내내 속으로 되뇌었다”고 말했다.
납덩이 메고 조개 잡는 머구리
‘머구리’는 바다에서 조개나 멍게, 해삼 등을 채취하는 잠수사, 그리고 그들이 쓰는 투구같이 생긴 헬멧을 의미한다. ‘잠수하다’라는 뜻의 일본어 ‘모구루’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수협 50년사’에는 1932년 머구리에 공기통을 연결한 일본 잠수사들이 제주도에서 조업을 하자 해녀들이 제주도사(현재의 제주도지사)에게 항의한 사건이 나온다. 이 시기 머구리가 국내에 도입된 것이다.
박명호 씨(49)는 ‘탈북 머구리’다. 강원 고성군 인근 바다에서 문어 해삼 멍게 미역 등을 채취한다. 그는 함경남도에서 17세부터 40세까지 군인이었다. 식사가 부실해 스스로 바다에서 해산물을 채취해 먹었다. 2006년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탈북한 뒤로는 머구리로 일하고 있다.
그는 “잠수를 하려고 양쪽 신발에 납덩어리를 7kg씩, 앞뒤 허리에 10kg씩, 어깨에 7kg를 메고 바다에 들어간다”며 “위험한 일이다 보니 머구리 10명 중 5명은 포기하고 3명은 죽고 1명은 아프고 1명만 성공한다는 말도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채취한 해산물은 선장과 선원이 20%씩, 잠수사가 35∼40%, 나머지를 선주가 가져간다고 한다.
감압병은 생명에 위협
잠수사들이 흔히 겪는 직업병은 감압(減壓)병이다. 물속에서 호흡장비를 통해 전달받은 공기 중 산소는 자연스럽게 배출되지만 질소는 체내 지방과 혈액에 녹는다. 위로 올라올 때 3m마다 1분 이상 머물러 체내 압력을 서서히 낮춰야 질소가 빠져나간다. 그러나 갑자기 나오면 질소가 팽창해 혈액 속에 공기방울을 만든다. 이 방울이 혈액순환을 막으면 근육통이 오고 심하면 근육이 마비된다. 뇌로 가면 뇌졸중, 폐로 가면 폐색전증이 생긴다. 차원철 삼성서울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구조작업을 할 땐 가능한 한 긴 시간을 수중에 머물고 한계에 다다랐을 때 급하게 올라오다 보니 충분히 감압을 하지 못하고 올라오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잠수사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도 시달린다. 물속에서 훼손된 시신, 유가족들의 오열하는 모습을 마주하면서다. 심민영 국립서울병원 심리적외상지원팀장은 “구조작업에 투입되는 잠수사들은 가족 다음으로 3차 피해자”라며 “성격이 예민해지고 급해지는 게 대표적인 증상”이라고 말했다.
안전사고도 일어난다. 수중공사 전문업체 SU수중산업개발의 박병수 대표(36)는 “지난달 말에도 인천 한 화력발전소에서 잠수사 1명이 사망했다”며 “사업을 발주한 업체에서 안전장비를 정하다 보니 잠수사는 장비가 충분치 않더라도 돈을 벌려면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우려했다.
▼ 잠수를 돕는 장비들 ▼ 감압체임버, 체내 질소 거품 빼줘… 한 대에 1억 기체압축기, 배 위에서 머구리에게 공기 공급
잠수를 하기 위해선 많은 장비가 필요하다.
현재 선체 수색에 투입된 잠수사들은 감압병을 예방하기 위해 ‘기압조절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일명 ‘감압체임버’로 불리는 이 장비는 잠수사 체내에 쌓인 질소 공기방울을 빼는 장비다.
이 장비에 들어가면 우선 산소공급 마스크를 쓴다. 감압병 증상에 따라 조절하지만 최대 18m까지 잠수한 것처럼 장비 내 기압을 높인다. 몸 전체의 압력을 높여 혈액 속에서 공기방울로 기화한 질소를 다시 혈액에 녹이는 것이다. 이때 산소를 흡입하면 호흡으로 질소가 체외로 빠진다. 차주홍 한국산업잠수기술인협회 회장은 “증상에 따라 2시간 15분에서 46시간까지도 치료를 받는다”며 “가격이 1억 원까지 하는 고가라 국내에 구비한 곳이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번 구조현장에서 주목을 받은 장비로는 ‘컴프레서’라고도 불리는 ‘기체압축기’가 있다. 해경이 “군경 잠수사들이 공기통을 어깨에 메고 물에 들어가는 것과 달리 민간 장비를 사용하면 잠수시간이 더 길어진다”고 말한 장비다. 기체압축기는 호스를 통해 통상 20기압으로 압축된 공기를 잠수사에게 보내준다. 이론적으로는 무한대로 수중작업이 가능하다. 이 장비를 사용한 방식을 ‘표면 공급식 잠수’라고 한다. 일명 ‘머구리’ 잠수사들이 쓰는 장비다. 등에 메는 휴대용 공기통을 사용한 ‘스쿠버 잠수’보다 잠수시간이 훨씬 길지만 이번 사고처럼 선체 같은 복잡한 구조물 속에서는 활용이 힘들다. 공기 공급 호스가 꼬이거나 파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조현장 투입을 놓고 논란의 대상이 됐다가 결국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 ‘잠수종(다이빙벨)’은 2∼4명이 들어갈 수 있는 종 모양의 구조물이다. 컵을 수조에 거꾸로 넣을 때 컵 속의 공기 때문에 물이 컵에 다 들어차지 않는 것처럼 잠수종에 호스로 계속 공기를 공급해 물속에서 잠수사들이 숨쉴 수 있는 구조다. 바닷속에서 잠수사들의 휴식처 역할을 한다. 또 종의 양옆 부분이 터져 있어 잠수사들이 물속에서 들락거리기에 편하다. 그러나 언제나 사용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차 회장은 “이번 사고가 발생한 맹골수도처럼 조류가 거세면 잠수종을 매단 선박이 흔들리면서 잠수사가 위험에 처하거나 기존 해오던 작업을 방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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