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美 수학여행 버스, 비상창문 4곳 탈출 시연해야 탈 수 있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7일 03시 00분


[세월호 참사 ‘안전 대한민국’ 이렇게 만들자]
美 학교 재난훈련 현장

몸이 기억하게… 형식적으로 치러지거나 아예 빼먹는 한국의 학교 재난훈련과는 달리 미국의 모든 초중고교 및 대학은 철저하게 실제 상황을 대비한 훈련을 펼친다. 왼쪽은 화재 발생 때 대피하는 플로리다 주 미첼고등학교의 파이어드릴, 오른쪽은 뉴욕 주 올버니 사우스콜로니 교육청에서 실시한 버스 탈출 훈련. 사진 출처 뉴욕 사우스콜로니 교육청 홈페이지
몸이 기억하게… 형식적으로 치러지거나 아예 빼먹는 한국의 학교 재난훈련과는 달리 미국의 모든 초중고교 및 대학은 철저하게 실제 상황을 대비한 훈련을 펼친다. 왼쪽은 화재 발생 때 대피하는 플로리다 주 미첼고등학교의 파이어드릴, 오른쪽은 뉴욕 주 올버니 사우스콜로니 교육청에서 실시한 버스 탈출 훈련. 사진 출처 뉴욕 사우스콜로니 교육청 홈페이지
한국에서 중학교 2학년까지 다니다가 미국으로 건너와 뉴저지 주의 노던밸리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A 양(17). 그녀가 놀랐던 것 중 하나는 학교의 빈번한 각종 안전훈련이었다. 거의 일주일에 한 번꼴로 화재 대피 훈련(Fire Drill), 총기 사고에 대비한 록다운(Lockdown) 훈련, 지진 대비 훈련 등이 돌아가면서 실시됐다. 정해진 날짜와 시간도 없으며 미리 공지하지도 않는다. 수업 및 쉬는 시간, 심지어 시험 시간에도 불시에 벨이 울린다.

○ 재난훈련 때 장난치면 벌 받는 나라

A 양이 2012년 중학교 졸업반 때 워싱턴으로 4시간가량 걸리는 수학여행을 떠날 때였다. 학교에서 버스 탈출 훈련을 실시했다. 사고에 대비해 뒤쪽과 위쪽, 좌우편에 설치된 4곳의 비상창문을 여는 방법을 각자가 시연하도록 했다. 학생들이 붉은 레버를 일일이 돌려 비상창문을 실제로 열고 탈출한 뒤에야 훈련은 끝났다.

인근 중학교에 다니는 동생 B 군은 “학교 훈련은 장난이 아니라 진짜 상황이 벌어진 것처럼 이뤄진다”고 말했다. 화재 대피 훈련 중 장난을 치는 것은 물론이고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더라도 반성문이나 방과 후 남기 같은 처벌을 받는다. 훈련이 시작되면 교사들은 정해진 매뉴얼대로 학생들을 인솔해 대피한다. 이때 교사들은 응급 약품, 담요, 세면도구 패키지 등 10여 개의 물품을 담은 부피 5갤런(약 19L)짜리 ‘비상키트(Go-kit)’와 컴퓨터 파손에 대비해 학생들의 파일 등을 들고 대피한다. 록다운 훈련 때는 총기를 든 범죄자가 창문을 통해 볼 수 없는 교실의 사각지대로 숨는 연습을 한다.

유치원에서부터 대학원까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재난훈련이 철저한 이유 중 한 가지는 정부의 관심과 지원 덕분이다. 2004년 1월 미국의 유일한 포괄적 사고 대응 시스템인 국가사고관리시스템(NIMS)을 구축한 연방재난관리청(FEMA)은 이를 모든 학교에 적용할 수 있도록 유인책을 내놓았다. 그중 하나가 미 교육부를 통해 2004년부터 지원되는 ‘학교 위기 대비 및 관리(REMS)’ 펀드다. 2년 단위로 100개에 가까운 학교가 돌아가면서 이 펀드를 받아 재난 대응 시스템을 갖추고 훈련을 실시한 뒤 철저한 사후 평가를 받는다. 이에 따라 오리건 주 포틀랜드 시 교육청은 2010∼2012년 65만8206달러(약 6억8000만 원)를 지원받아 19개에 이르는 재난 대응 과제를 마무리했다.

법무부는 지역 경찰 및 소방서, 학교와 연계한 ‘안전한 학교(SOS)’ 펀드를 지원한다. 매사추세츠 주 브록턴 시 경찰은 지난해 48만9900달러를 지원받아 학교와 연계한 재난 대응 시스템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었다. 지난해 32개 주의 경찰서 93곳이 이 자금을 지원받았다.

○ 재난 대응 관련자들 훈련도 철저

올해 초 뉴저지 주 노스베일의 한 대형 교회에서 화재경보가 울렸다. 학생들이 장난을 치다가 벌어진 일이다. 많은 사람이 이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에 실제 화재가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대부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교회 관리 책임자들은 급히 정해진 대피 장소로 사람들을 대피시켰고 대부분 묵묵히 지시를 따랐다. 화재 벨이 울렸을 때 이유와 상관없이 무조건 매뉴얼대로 대피하지 않으면 벌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 학교 기업 단체 등 어떤 조직을 막론하고 재난 대응과 안전 관리에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사람들을 철저히 교육하는 점도 미 재난 대응 시스템의 큰 경쟁력이다. 이들은 FEMA 산하의 일종의 대학인 위기관리인스티튜트(EMI) 교육과정을 이수하도록 권고받는다. 사실상 강제 조항에 가깝다. 교육을 받기로 한 사람이 개인 사정으로 빠지면 같은 기관에서 다른 사람을 보내야 한다.

FEMA 관계자는 “커리큘럼은 강의실 수업과 실제 현장에서 발생하는 상황을 시뮬레이션하는 현장 교육을 병행한다”고 밝혔다.

<글 싣는 순서>

<1> 골든타임 다시는 놓치지 말자
<2> ‘재난 컨트롤타워’가 없다
<3> 정부 관리 감독 왜 안 되나
<4> 안전은 최선의 투자다
<5> 피해자 가족 평생 돌보자
<6> ‘집단 위험 망각증’ 해부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미국#재난훈련#수학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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