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가족들과 마주하다 보니 직접 물어보기 어려웠던 가족 이야기를 먼저 말해주는 분도 있어요.”
지난달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 직후부터 전남 진도군 팽목항과 실내체육관에서 봉사해온 대한약사회 소속 약사들은 아직도 현장에서 실종자를 애타게 찾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대한약사회 소속 이승용 씨(43)는 “실종자 가족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에 영양제라도 하나 주머니에 넣어드린다. 마지막 한 분까지 힘이 돼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의 정성에 냉랭하던 실종자 가족들도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일부 가족은 담당 약사에게 “시신이 수습됐다는데 함께 가 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하거나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고마움을 전하고 가는 이도 있었다.
사고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넘으면서 현장의 자원봉사도 변하고 있다. 처음에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말을 걸지 말라’는 수칙이 있을 만큼 가족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지만 요즘은 가족들과의 소통이 점차 늘고 있다. 전남 자원봉사센터에서 근무하는 장려진 씨(30·여)는 “가족들이 먼저 봉사자들에게 ‘힘들지 않으냐’ ‘식사 더 많이 하세요’라며 말을 건네기도 한다”고 전했다. 세탁봉사를 하는 한 자원봉사자는 “처음에는 얼굴조차 마주보지 않았던 가족들이 지금은 눈을 마주치고 ‘고맙다’고 인사를 건넨다”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를 반영해 전남 자원봉사센터에서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만든 ‘J(진도) 수칙’도 일부 조정됐다. ‘실종자 가족들을 존중하고 서로 마주할 때면 목례로 예를 표시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진도 수칙을 만든 이성태 사무국장(51)은 “처음에는 봉사자들도 가족들에 대한 두려움과 미안함이 많았다”며 “아직은 조심스럽지만 조금씩 정서적 교류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고 밝혔다.
한때 2300여 명까지 몰렸던 자원봉사자는 19일 400여 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실종자 가족들을 배려한 ‘맞춤식 봉사’는 계속되고 있다. 사고 직후부터 시작된 세탁 봉사를 비롯해 가족들을 위한 피부관리, 미용, 발마사지 등은 봉사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졌다. 건강이 좋지 않은 가족들을 위해 맞춤식 식단도 제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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