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73)이 한 달 남짓 전인 지난달 29일부터 이미 전남 순천시 서면 학구리의 별장으로 도피할 준비를 한 사실이 27일 검찰 수사로 드러났다. 당시 검찰이 계열사 대표들을 줄소환하며 수사의 칼끝이 자신을 향해 오자 도망갈 준비에 나선 것이다. 27일 범인도피 혐의 등으로 구속된 구원파 신도 4명의 혐의에는 유 전 회장의 도주 행적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 유 전 회장 측근 “순천 별장 비워둬라”
유 전 회장의 최측근인 금수원 이석환 상무(잠적)는 지난달 29일 순천시의 구원파 신도인 변모 씨(62) 부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상무는 변 씨에게 “별장 ‘숲속의 추억’을 비워 달라”고 했다. 변 씨 부부는 유 전 회장의 두 아들이 대표인 몽중산다원영농조합 소유 송치재휴게소(상행선 방향)와 S염소탕 식당, ‘숲속의 추억’을 관리해 왔다.
지난달 29일은 김한식 청해진해운 대표가 검찰에 소환되고 송국빈 다판다 대표에게 소환 통보가 된 날이다. 앞서 유 전 회장의 개인사업체인 붉은머리오목눈이 사무실 등이 압수수색을 당하는 등 수사가 자신을 향해 조여들기 시작하던 때다.
유 전 회장 측이 순천을 도피처로 정한 것은 이곳에 구원파 순천교회, 연수원, 영농조합 등이 있고 도와줄 신도도 많기 때문인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도주 총괄 지휘는 전남지역 신도 대표 격인 추모 씨(60)와 26일 체포된 이재옥 헤마토센트릭라이프재단 이사장이 주도했다. 변 씨 부부는 이 상무의 요구대로 별장을 깔끔히 청소한 뒤 자물쇠 비밀번호를 추 씨에게 알려줬다. ○ 차량 번호판 바꾸려 전동 드릴도 준비
순천 별장이 은신처로 정해지자 유 전 회장의 최측근인 양모 씨(56·지명수배)와 설계업자 한모 씨(49)는 이달 6∼8일 별장 인근에 머물며 유 전 회장의 은신이 용이하도록 별장 내부 수리에 나섰다. 목수인 양 씨는 별장 창문을 가리기 위해 순천시내 마트에서 커튼을 구입하는 등 각종 물품을 샀다. 창문에는 부직포를 붙여 빛이 새 나갈 틈을 모두 막았다.
또 변 씨에게 차량 번호판을 수시로 교체할 수 있도록 충전형 드릴을 준비하게 했다. 유 전 회장이 가짜 번호판을 달고 검경의 추적을 피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대비한 것이다.
한 씨는 17일경 경기 안성시 금수원에서 미네랄 생수 3, 4박스와 말린 과일 등 유 전 회장이 먹을 음식물을 차량에 실어 별장에 가져왔다. 이들은 추적을 피해 차명 휴대전화를 이용하여 서로 연락했다. 검찰은 은신 준비가 끝난 이달 초순경 유 전 회장이 순천에 내려온 것으로 보고 있다. 당초엔 17일 유 전 회장이 금수원을 빠져나간 것으로 추정했으나 이보다 열흘 정도 전에 몸을 숨긴 것이다.
25일 별장에서 체포된 30대 여신도 신모 씨(구속영장 청구)가 언제부터 유 전 회장과 머물렀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한 씨는 “별장에서 유 전 회장을 두 번 봤다. 신 씨가 추 씨, 양 씨와 함께 있었다”고 진술했다. 반면 추 씨는 “유 전 회장을 만난 적도 없다. 양 씨와 한 씨가 순천에 온다고 해 숙소만 마련해 줬을 뿐”이라고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최측근인 양 씨는 지금도 도피 중인 유 전 회장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도피 도운 신도들, 유병언과 깊은 인연”
구원파 측은 최근 신도들이 잇따라 체포되자 검찰이 과잉 수사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27일 구속된 신도 4명은 유 전 회장 또는 구원파와 깊은 관계가 있는 인물이었다. 변 씨 부부는 유 전 회장의 은신처를 마련해주고 차명 휴대전화를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추 씨는 몽중산다원영농조합법인 감사이자 세모스쿠알렌 순천대리점 대표다. 체포 상태인 이재옥 이사장은 구원파가 18일 언론에 금수원을 공개할 때 전면에 나서 유 전 회장을 옹호했다.
인천=장관석 기자 jks@donga.com 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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