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2시 반. 여야 지도부가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유가족 150여 명과 만났다. 본래 국회 귀빈식당에서 여야 지도부와 유가족 대표 10명만 만나고 나머지 유가족은 세월호 침몰사고 국정조사특위계획서가 본회의에서 채택되는 모습을 지켜볼 예정이었다. 그러나 여야 이견으로 계획서 채택이 무산되자 화가 난 유가족들이 직접 나선 것이다.
유가족 앞에서도 여야 지도부는 자신의 주장만 반복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국조특위계획서에 청문회 증인을 명시하자고, 새누리당은 기관보고를 받고 난 뒤 나머지 증인을 결정하자고 주장했다.
듣다 못한 유가족의 한 대표는 “국정조사에서 사람이 먼저냐, 기관이 먼저냐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며 “시간을 끈다면 여야 모두 저항이 있을 것”이라고 질타했다. 결국 여야 지도부는 “합의를 하지 않으면 집에 가지 않겠다”는 유가족들의 엄포에 마지못해 합의에 나섰지만 끝내 결론을 못 냈다. 여당은 기껏 국정조사특위 전체회의를 단독으로 소집했다 슬그머니 철회한 게 다였고, 야당은 국회 농성을 위한 준비태세에 돌입하는 구태를 보였다.
세월호 참사 이후 모든 상임위 회의와 긴급 대정부질문 때 여야 의원들의 첫마디는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라는 사과였다. 그러나 당장 국조특위 구성을 두고 당리당략의 덫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 국정조사 증인채택 소극적인 與
새정치연합 국조특위계획서에는 김기춘 비서실장,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 이정현 홍보수석비서관, 박준우 정무수석비서관 등 청와대, 정홍원 국무총리, 황찬현 감사원장, 남재준 전 국가정보원장,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 등 내각, 길환영 KBS 사장, 안광환 MBC 사장을 포함한 언론계 등 40여 명을 증인으로 요구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헌정 사상 청와대 증인을 국조특위계획서에 명시한 전례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청문회 증인을 특위에서 의결하지 않고 본회의에서 미리 처리하는 건 위법 소지가 있다고도 주장했다. 야권이 김기춘 비서실장을 부르려는 건 대통령을 흠집 내기 위한 정치적인 의도를 가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계획서에 증인을 명시하지 않겠다는 건 새누리당이 청문회를 앞두고 증인채택 합의에 시간을 끌다가 흐지부지 국정조사를 마무리하려는 의도라고 의심한다. 새누리당이 증인을 모두 받아들이지는 않더라도 향후 증인 채택 건으로 국정조사 진행에 지장이 없도록 장치는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애꿎은 원 구성 볼모로 잡는 野
국조특위 합의 불발은 애꿎은 원 구성으로 불똥이 튀었다. 새정치연합은 국조특위가 합의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날 본회의 개의를 거부했다. 이 때문에 국회의장과 부의장단, 상임위원장 등 하반기 원구성은 무산됐다.
새정치연합은 이날 당 의원총회를 통해 새정치연합 몫 국회부의장으로 이석현 의원을 선출했지만 상임위원장 후보는 선출조차 하지 않았다. 내부적으로 교통정리도 안 된 것으로 전해졌다. 새정치연합은 국조특위 구성 처리 없이 원 구성 처리는 불가하다고 주장하지만 전혀 무관한 둘을 묶어 국회법을 못 지키게 한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 ‘김영란법’도 무산
세월호 참사의 후속 대책으로 여야 정치권이 한목소리로 약속했던 ‘김영란법(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 제정안)’의 5월 임시국회 처리도 무산됐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이날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김영란법을 재심의했으나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 이달 말 19대 상반기 국회 정무위원들의 임기가 끝남에 따라 여야는 새로 구성되는 후반기 국회에서 추가로 이 문제를 논의키로 했다.
여야는 ‘이해충돌 방지제도’ 부문에서 합의를 보는 데 실패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직자가 자신 또는 가족, 친족 등과 이해관계가 있는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것이 국민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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