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광주지법 201호 법정에서 열린 세월호 선원 15명에 대한 재판 실황은 보조법정인 204호에도 실시간으로 영상과 음향이 전달돼 유가족과 일반인들이 방청했다. 재판장인 임정엽 부장판사는 재판에 앞서 이례적으로 희생자 가족에게 위로의 말을 먼저 건넸다. 그는 “저희 재판부도 이번 참사에 대해 대단히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이번 재판은 비극적인 이 사고가 왜 발생했는지, 피고인들에게 어떤 책임이 있는지, 책임이 인정된다면 어느 정도 형벌을 받아야 하는지를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 부장판사는 피해자 가족의 고성과 항의로 재판이 세 차례 중단되자 “재판 시간이 앞으로 6개월밖에 없다. 몇십 명의 증인이 나오는 상황에서 재판이 계속 중단돼 6개월이 넘어가면 (1심 구속기간이 끝나) 피고인을 다 풀어줘야 한다”며 피해자 가족의 협조를 부탁했다.
이날 재판은 앞으로 공판을 준비하는 절차로 피해자 대표 의견, 검사의 기소 취지, 피고인별 변호인들의 공소사실 인정 여부, 증거 신청 등이 이어졌다. 피해자 대표 의견을 낸 김병권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 위원장은 “피고인들이 탈출하라는 방송을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했다면, 도망가려고 했던 순간에 안내라도 했다면 아이들은 살 수 있었다”며 “이것이 살인이 아니라면 무엇이 살인이냐”고 말했다.
그는 “피고인들은 승객만 죽인 게 아니라 가족들의 영혼, 사회의 신뢰까지 죽였다”며 “철저한 진실 규명과 엄정한 처벌을 원한다”고 덧붙였다. 아직까지 시신조차 찾지 못한 단원고 학생 실종자 가족 이모 씨는 “어제(9일)까지 바지에서 수색작업을 같이하다가 재판을 보러 왔다”며 “12명의 아직 찾지 못한 실종자가 있음을 재판부가 잘 헤아려 달라”고 호소했다.
재판에는 피고인 15명과 변호인 7명, 수사 검사 4명이 참여했다. 이날 재판 과정에서 검사와 변호사가 공소사실 인정 여부를 놓고 맞서면서 향후 재판 과정에서의 날선 공방을 예고했다. 검찰은 기소 의견을 통해 선장 이준석 씨 등 피고인 4명에게 세월호가 침몰하는데도 피해자들에게 선내 대기 방송만 하고 배에서 탈출함으로써 승객들을 숨지게 해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박재억 광주지검 강력부장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 선내 대기 지시만을 따랐던 착한 학생들은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는 말만 남기고 탈출 시도도 못한 채 갇혔다”고 말하며 순간 울먹였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검찰은 피고인 각자가 범한 죄에 상응하는 엄중한 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희생자와 그 가족들이 잃어버린 국가에 대한 신뢰를 조금이라도 회복할 수 있도록 무거운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공소 유지에 임하겠다”고 다짐했다.
검찰은 선원들이 승객을 직접 죽이진 않았지만 승객들이 침몰하는 배에 갇혀 생명을 잃을 상황임에도 탈출한 것을 볼 때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봤다. 검찰은 특히 기관장 박기호 씨(53)가 기관부 선원 6명을 데리고 탈출할 때 부상을 입고 복도에 쓰러져있던 조리원 2명을 보고도 그냥 지나친 점 등을 구체적 사례로 들고 있다.
하지만 선원들은 변호인을 통해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하고 나섰다. 이 선장은 “세월호 침몰 당시 부상을 입었지만 구호조치를 다했고 조타실 선원들 중 마지막으로 탈출했다”고 밝혔다.
1등 항해사 강원식 씨(42)는 이날 “조타실을 탈출한 것은 출입문이 뜯겨 선체 밖으로 튕겨나간 것뿐이다. 해경 경비정이 사고현장에 도착한 것을 몰랐다”며 “세월호 침몰 사고로 승객들이 숨질 것도 예상 못했다”고 주장했다.
기관장 박 씨는 “부상을 입은 조리사들을 버리고 탈출한 것이 아니라 다른 선원들이 데리고 올 줄 알았다”고 주장했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해 이 선장이 혐의를 사실상 전면 부인하자 방청석에서 지켜보던 희생자 가족들의 고성이 터져 나왔다. 가족들은 “아무리 국선(변호사)이지만 너무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재판은 오후 6시경 끝났다. 피고인 15명 중 4명에 대한 변호인 공소사실 인정 여부는 다음 공판준비기일로 연기됐다. 임 부장판사 등 판사 3명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의미로 판사가 가장 먼저 퇴정하는 관례를 깨고 마지막으로 법정을 나섰다.
법정을 빠져나온 피해자 가족들은 피고인과 변호인단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법원 내 호송 출입건물 앞에서 1시간가량 연좌 농성을 벌인 뒤 해산했다. 한 단원고 학생의 어머니는 “판사가 피고인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가족들의 항의를 막았는데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이 나라는 우리 아이를 왜 보호하지 못했느냐”고 원통해했다. 다음 재판은 17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광주=정승호 기자 shjund@donga.com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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