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전남 진도 주민이자 화가인 김영주 씨(48)의 부인 정성주 씨(39)는 민무늬 하얀 액자에 넣은 그림을 조심스럽게 세월호 참사 실종자 가족에게 전했다. 남편 김 씨가 그린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초상화다. A4 용지 크기의 그림을 받은 실종자 박영인 군(17)의 어머니는 “내 아들이라 그렇기도 하지만 참 잘생겼네”라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김 씨 부부는 5년 전 김 씨의 고향인 진도군에 정착했다. 김 씨는 10여 년 동안 서울 대학로와 목포 평화공원, 지역 축제 등에서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화가다. 부인 정 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 진도실내체육관을 드나들며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정 씨는 “남편의 특기를 살려 ‘재능기부’를 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했다. 외부에 알려지기를 꺼리는 남편 대신 정 씨가 사람들을 만나 사진을 받아 오고, 완성된 그림을 다시 가족들에게 전해줬다.
처음에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상처를 줄까 봐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렇지만 실종자 가족들은 안면이 있던 정 씨에게 흔쾌히 자녀의 사진을 내주고 초상화를 부탁했다. 그렇게 지난달 27일 단원고 남현철 군(17)의 그림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학생 4명의 초상화를 그려줬다. 처음에 김 씨는 가족들이 힘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밝고 즐거운 분위기의 캐리커처를 그려줬지만 실종자 가족들은 연필로 그린 정통 초상화를 원했다. 정 씨는 “아무래도 초상화가 차분하고 실제에 가까워서 더 선호하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실종자 가족들이 캐리커처로 된 가족 그림을 갖고 싶다고 해 실종자 가족들의 캐리커처도 그리고 있다. 안산에서 내려온 세월호 유가족이 초상화를 부탁하기도 했다. 김 씨 부부는 “학생들뿐 아니라 일반인 실종자 가족들에게도 그림 선물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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