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이던 18일 전남 진도체육관에는 점심 메뉴로 삼계탕이 나왔습니다. 삼계탕을 바라보던 실종자 가족들은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라며 젓가락을 옮깁니다. 찬 바람을 막아주던 모포는 얇은 여름이불로, 온풍기는 제습기로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100일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실종자 가족들의 삶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사랑하는 가족 10명이 바닷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들은 기억 속의 아이, 남편, 엄마의 모습을 그려냅니다. 좋아한 음식이나 옷은 무엇이었는지, 말투나 웃음소리는 어땠는지…. 이야기를 나누던 가족들은 “보고 싶다”며 엷은 미소를 띱니다. 이렇게 사랑하니까 이제는 그만 나와 달라고, 그거 하나면 된다고 두 손을 맞잡습니다. 참사 후 처음으로 기자와 단둘이 마주앉은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은 실종자 가족을 떠올리며 참회의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스스로를 ‘역사의 죄인’이라고 칭한 김 청장은 요즘 진도군청 창고에서 쪽잠을 자고 있습니다. 실종자 가족 곁을 100일 가까이 지킨 자원봉사자와 바닷속을 수차례 드나들며 시신을 거두어 왔던 민간잠수사는 ‘더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희생자들의 시신을 가족들에게 일일이 확인시켜주는 일을 맡았던 여검사는 하늘이 야속하다고 말합니다. 이들에게 세월호의 슬픔은 아직 현재진행형입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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