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00일]정부가 개선하겠다던 제도 점검해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4일 03시 00분


[세월호 100일, 기억하겠습니다]<하> 미적미적
화물 전산발권? 조직개편?, 밥그릇 싸움에… 여야 대립에…
1건도 국회 문턱 못넘고 표류

해양수산부는 세월호 참사 열흘이 지난 4월 26일 “연안여객선 승선 절차, 항공 수준으로 확 바꾼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차량 및 화물에 대한 전산 발권을 7월 1일부터 도입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화물 선적권 발권 전 개별 화물 무게를 재도록 해 적재되는 화물의 총량이 얼마인지 확인해서 적정량 이하까지만 싣도록 유도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15일 본보 기자가 전남 목포시 항동의 목포연안여객터미널 내 화물터미널에서 취재한 결과 화물 전산 발권도, 화물차 무게를 재는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해수부가 6월 말 “화물의 무게를 재는 계근 시설이 갖춰지지 않았다”며 돌연 이 제도 시행을 연기했기 때문이다. 계근대는 차량용의 경우 저울 위에 도로와 같은 높이의 평평한 철판이 설치돼 차량이 그 위에 올라서면 무게가 나오는 시설이다. 세월호 참사의 주요 원인으로 화물 과적이 지목됐지만 여전히 연안 여객선 출항 시 배에 실린 화물의 무게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해수부에 따르면 문제는 제주특별자치도다. 현재 차량이나 차에 실린 화물을 수송하는 대형 카페리 선박이 운항하는 노선은 부산항, 전남 목포항, 고흥군 녹동항, 완도군 완도항, 경남 사천시 삼천포항에서 제주항을 오가는 5개 노선으로 제주항 운영권자인 제주도가 반대하면 제도의 전면 시행이 어렵다. 제주도는 “터미널 내 장소가 협소해 설치가 어렵다”며 계근대 설치를 거부하고 있다.

애당초 승객, 선주와 화주, 육지 승객과 도민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를 일단 ‘개선하겠다’고 발표하고 보자는 식으로 접근한 정부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제주가 계근대 설치를 반대하는 이유는 사실 다른 데 있다. 도민의 피해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도 관계자는 “한 번에 수송할 수 있는 화물량이 줄면 물류비가 올라 감귤 등을 육지로 운송하는 제주도민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며 “여객과 식료품, 식수를 비롯한 물, 연료 등의 무게가 매번 다르고 만재흘수선 점검 등을 통해 안전 운항을 관리할 수 있는데도 화물의 무게만 측량해 선적량을 제한하는 것은 중복 규제”라고 주장했다. 해수부는 항만 운영권을 갖고 있는 목포항 등에서 먼저 시행할 수 있는데도 “형평성에 문제가 생긴다”며 시행을 일괄 유예한 상태다. 전산 발권의 경우에는 여객만 이뤄지고 있다. 제도 하나를 바꾸는 데에도 이처럼 이해충돌이 벌어진다.

본보 취재팀은 세월호 참사 100일을 맞아 참사 이후 정부가 안전을 강화하겠다며 쏟아낸 정책들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법 개정은 이뤄지고 있는지 살펴봤다. 정부가 참사 이후 개선·보완하겠다고 쏟아낸 각종 안전관련 제도는 입법 미비로 거의 시행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무조정실은 대통령 담화 뒤인 5월 20일 후속 조치로 정부 조직 개편, 퇴직공직자 취업 제한 강화, 대형 사고 처벌 강화, 국가안전처 신설 등 18개 과제를 6, 7월 중 시행하겠다고 밝혔지만 23일 현재 시행이 완료된 것은 4개에 불과하다. 대부분 국회에서 법을 제정·개정해야 추진이 가능한 사안이지만 여야의 대립 속에 8월 시행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물론 100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많은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다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부와 국회가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한 약속만은 지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종엽 jjj@donga.com·김준일 / 목포=백연상 기자
#세월호#해양수산부#연안여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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