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도주계획 짤때, 검찰 앉아서 출두만 기다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5일 03시 00분


[유병언 사망/생포 못한 3가지 이유]

《 상대가 누군지도 몰랐다. 현상금 5억 원이 걸린 상대의 시신을 발견하고도 알아보지 못했다. 검찰과 경찰은 공조수사는커녕 기본적인 정보조차 공유하지 않았다. 하루 평균 3만 명의 경찰관이 동원된 ‘단군 이래 최대 수색’이라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체포 수사는 그렇게 실패로 끝났다. 이번 수사의 문제점 3가지를 정리했다. 》

[1] 구원파의 조직력 얕잡아 보고 방심했다

거짓진술에 휘둘려 검거 골든타임 허비


검경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검거에 실패한 출발점은 유 전 회장 측이 치밀한 준비하에 도주하리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조직적인 비호세력과 자금력을 갖춘 상대를 너무 가볍게 본 것이다. 도피가 예상될 땐 퇴로를 차단하고 비호세력과 떨어뜨려 놓는 것이 원칙인데도 수사 초기 유 전 회장이 순순히 나타나주길 기다린 것부터가 패착이었다. 검찰이 자진 출석을 기다리며 뜸을 들이는 사이 유 전 회장은 기독교복음침례회(일명 구원파)의 조직적 지원을 받으며 추적망을 쉽게 벗어났다.

검찰은 4월 말 수사에 착수한 뒤 곧장 유 전 회장의 신병을 확보하는 대신 자진 출석을 유도했다. 수사팀 고위 관계자들은 구원파 핵심 인사들과 직접 접촉하며 설득을 시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5월 2일 송국빈 다판다 대표(62·구속 기소)를 계열사 대표 중 처음으로 구속했을 때도 검찰은 ‘장수(측근)들이 잡혀 들어가는 것을 주군(유 전 회장)이 숨어서 지켜볼 리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5월 12일 장남 대균 씨(44)가 소환에 불응할 때까지도 검찰은 “그래도 아버지는 다를 것”이라며 유 전 회장이 제 발로 나타날 ‘명분’을 주는 데 공을 들였다.

사회적 지위 때문에 도주할 마음을 먹기 어려운 기업인이나 공직자를 수사할 때와 비슷한 접근 방식을 취한 것이다. 하지만 유 전 회장은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난 지 사흘 만인 4월 19일 경기 안성시 금수원에서 측근들을 모아 도피 계획을 짠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검찰은 유 전 회장 측근들의 거짓 진술에 휘둘려 검거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말았다. 유 전 회장은 수사 초기인 4월 25일경 변호사를 통해 “검찰이 소환하면 응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이틀 전 경기 안성시 금수원에서 빠져나와 인근 신도의 집으로 도피한 뒤였다. 여비서 신모 씨(33·구속)의 거짓 진술을 믿은 것도 결정적 실수였다. 신 씨는 “유 전 회장이 5월 25일 새벽 전남 순천시 은신처 ‘숲속의 추억’에서 조력자와 함께 떠났다”고 진술했다가 지난달 26일 “벽에 숨어 있었다”고 진술을 바꿨다. 이때 검찰은 추적 방향을 잘못 잡고 전남 해남군 등을 뒤지고 있었다.

[2] 검경, 수사정보 공유 안하고 따로 놀았다

檢 한달전 확보한 돈가방… 警 “행방 모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추적 작전은 그동안 검찰과 경찰이 외친 ‘공조 수사’가 얼마나 허구였는지 보여준 채 실패로 끝났다.

경찰이 유 전 회장 검거를 위해 인천지방경찰청에 설치한 특별수사팀은 23일 오전 “유 전 회장이 들고 다닌 돈 가방의 행방을 찾을 수 없다”고 경찰청에 보고했다. 유 전 회장 시신을 확인한 지 이틀이 지났지만 유류품 중 금품이 없어 타살 의혹이 제기된 상황이었다. 당시 수사팀은 검찰에 이를 문의했지만 “모른다”는 답을 받았다.

문제는 그날 오후. 검찰은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6월 27일 유 전 회장의 전남 순천 은신처인 ‘숲 속의 추억’ 별장을 수색해 현금 8억3000만 원과 16만 달러(약 1억6480만 원)가 든 여행용 가방 2개를 압수했다고 공개했다. 경찰이 찾아 헤매던 가방을 이미 확보하고도 정보 공유를 하지 않은 것이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중요한 정보는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경찰은 “바보 취급을 당했다”고 분개했다.

불협화음은 결정적인 수사 과정에서도 나왔다. 검찰은 5월 25일 결정적인 진술을 전해 듣고 별장을 급습했다. 당시 주변 지리에 밝은 지역 경찰과 함께 출동해 별장 주변에 포위망을 구축하고 샅샅이 뒤졌다면 유 전 회장을 붙잡았을 가능성이 컸다.

검경이 만든 ‘유병언 블랙코미디’는 마지막까지 계속됐다. 경찰은 지난달 12일 발견한 유 전 회장 시신을 40일이 지난 뒤인 21일에야 유전자(DNA) 감식을 통해 확인했다. 초기 시신 수습에 나선 경찰이나 지휘한 검찰 모두 ‘ASA 스쿠알렌’ 등 유 전 회장과 연관된 유류품 목록을 보고서도 단순 변사로 처리하고 대검찰청이나 경찰청 등 상급 기관에 보고하지 않았다. 유병언 수사 정보를 놓고 계속 으르렁거리던 두 기관이 결정적인 순간에는 함께 ‘눈 뜬 장님’이 된 셈이다.

[3] 겉핥기 수색-감식… 수사의 기본 안지켰다

문 잠겨있다고 철수… 양회정 검거기회 놓쳐


‘출입문 노크했지만 열리지 않아 진입 포기하고, 별장 안에서 이중벽은 생각도 못하고, 노숙인 시신으로 예단하고….’

검경의 부실 수사는 5월 24일 오후 10시 인천지검 특별수사팀이 전남 순천시 생목동 한 아파트를 급습할 때부터 시작됐다. 수사팀은 아파트에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측근 추모 씨(61·구속)를 검거했다. 이어 추 씨에게 ‘유 전 회장 은신처가 어디냐’고 추궁해 ‘은신처는 송치재휴게소 옆 S흑염소탕집’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수사팀은 1시간 뒤인 오후 11시 S흑염소탕집을 급습해 주인 변모 씨(62·구속) 부부와 여종업원 김모 씨를 붙잡았다. 수사팀은 5월 25일 오후 3시경 기독교복음침례회 한 신도에게 ‘유 전 회장을 숲속의 추억이라는 별장에서 봤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수사관들은 서둘러 숲속의 추억으로 갔지만 문이 닫혀 있었다. 문을 노크했지만 인기척이 없자 물러섰다.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이날 오후 9시 반 숲속의 추억에 2차 진입을 시도했지만 2시간 동안 허술하게 수색하는 바람에 유 전 회장이 숨어있던 나무벽장을 발견하지 못했다.

앞서 수사팀은 25일 오전 2시경 유 전 회장의 측근인 양회정 씨가 머물던 숲속의 추억 인근 야망연수원에도 들이닥쳤지만 “문이 잠겨 있다”면서 돌아갔다. 그사이 양 씨는 재빨리 차를 타고 도망갔다. 수사팀은 검거 작전에서 주변 시설물 및 위치 파악, 포위망 구성, 퇴로 차단 등 수사의 기본을 지키지 않는 오점을 남겼다.

반면 이에 대응하는 유 전 회장은 변 씨 부부 등에게 ‘숲속의 추억 입구에 차량을 세워놓지 마라. 진입하는 차량 불빛이 보이면 도주하겠다’, ‘추적될 수 있는 휴대전화 통화를 하지 마라’고 지시하는 철저함을 보였다.

유 전 회장의 시신을 노숙인으로 예단한 것은 어이없는 실수였다. 6월 12일 유 전 회장 시신이 발견된 장소는 숲속의 추억에서 불과 2.5km 떨어져 있었음에도 말단 형사부터 서장까지 연관성을 떠올리지 못했다. 시신을 처음 살펴봤던 형사들은 다름 아닌 순천경찰서 유 전 회장 검거 전담팀이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순천=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유병언 전 회장 및 기복침 관련 정정 및 반론보도문]
#유병언 사망#검경 부실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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