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건혁]세월호 유족들 분열시킨 ‘정치권 불통’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3일 03시 00분


여야, 세월호法 제정 약속해놓고… 무능-무책임 일관, 불신만 키워
단원고-일반인 유족 갈등 유발

이건혁·사회부
이건혁·사회부
세월호 유가족들이 갈라서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 사망자는 현재까지 294명. 이 중 일반인 사망자 43명의 유가족 대책위원회 대표단이 21일 여야가 합의한 세월호 특별법 재합의안에 동의한다는 의견을 새누리당에 전달하면서 의견차는 가시화됐다. 경기 안산의 세월호 가족 대책위원회 결정과 배치된다. 일반인 유가족 대책위는 8월 중에 여야 합의안을 통과시켜 달라는 요구도 했다.

안산 단원고 유가족의 공식 입장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에 부여하는 특별법 제정이다. 22일 오전 40일째 단식을 이어오던 단원고 희생자 김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 씨가 병원으로 이송되면서 더욱 강경하게 ‘원안’을 고수하고 있다.

유가족의 분열은 또 하나의 비극이다. 이들은 세월호 사고 직후 유가족으로 묶이게 됐지만 진상 규명, 생계유지와 적절한 보상, 일상으로의 복귀 등에 이르기까지 원하는 바가 달랐다. 사고 초기 갈등이 있었지만 유가족들은 세월호 특별법이 모든 걸 해결할 열쇠라 보고 단합했다. 정치권도 그렇게 약속했다. “처음에 한 번은 정치를 믿었다”고 유가족들은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5월 유가족과의 면담에서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7월 여야 원내대표가 청와대에서 만나 “이달 중에 특별법에 합의하자”고 했지만 실패하고, 8월에 와서도 지지부진하자 기대를 접었다.

이제 유가족들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믿지 않는다. 말을 또 바꾸고,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 일반인 대책위 관계자는 “물론 우리에게도 (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되는) 특별법이 최선이지만, 8월까지 넘기면 재합의안마저 날아갈지 모른다”며 답답해했다. 그래서 한쪽은 재합의안을 받아들였고, 한쪽은 계속 투쟁한다.

유가족의 분열은 여야 모두의 책임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은 22일 “여당이 유가족을 갈라치기 한다면 집권당의 자세가 아니다”라고 비판했지만, 유가족을 설득하지 못하고 분열을 방조한 책임은 야당에도 있다.

일반인 유가족 김모 씨(32)는 기자에게 “아직도 시신이 영안실에 있다. 지금까지 제대로 울어보지도 못했다”고 했다. 화합과 갈등 조정 기능을 상실한 정치권의 무능력에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또다시 상처를 입고 있다.

이건혁·사회부 gun@donga.com
#세월호 특별법#단원고#유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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