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잊어선 안될… 또다른 슬픔이 있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31일 03시 00분


[세월호 200일, 기억하겠습니다]
수색헬기 추락으로 숨진 소방관 가족-동료 3인의 100일 이야기

1일로 세월호 참사 발생 200일을 맞지만 구조활동을 하다가 숨진 희생자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미미하다. 헬기사고로 정들었던 동료를 잃은 강원소방본부 특수구조단 이수남 행정지원팀장(왼쪽 사진), 고 안병국 소방위의 부인 한모 씨(가운데 사진)와 민간잠수사 고 이광욱 씨의 어머니 장춘자 씨 등 유가족과 지인들이 모두 “세월호 희생자도, 우리도 잊지 말아달라”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춘천·남양주=홍진환 jean@donga.com·청주=신원건 기자
1일로 세월호 참사 발생 200일을 맞지만 구조활동을 하다가 숨진 희생자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미미하다. 헬기사고로 정들었던 동료를 잃은 강원소방본부 특수구조단 이수남 행정지원팀장(왼쪽 사진), 고 안병국 소방위의 부인 한모 씨(가운데 사진)와 민간잠수사 고 이광욱 씨의 어머니 장춘자 씨 등 유가족과 지인들이 모두 “세월호 희생자도, 우리도 잊지 말아달라”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춘천·남양주=홍진환 jean@donga.com·청주=신원건 기자
11월 1일 세월호 참사 발생 200일을 맞아 희생자 추모 움직임이 다시 일고 있다. 하지만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진 이들이 있다. 바로 세월호 실종자 수색작업을 마치고 복귀하던 강원소방본부 소방대원 5명이다. 이들이 7월 17일 광주 광산구 소방헬기 추락사고로 숨진 지 106일이 지났다. 순직한 5명의 동료와 유가족은 세월호 유가족만큼이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전화번호 지우고 책상 치워도…동료 생각에 울컥

격납고 안은 고요했다. 소방헬기가 있어야 할 자리는 헬기 견인차와 강원소방본부의 25인승 미니버스 한 대가 차지하고 있었다. 강원소방본부 특수구조단 이수남 행정지원팀장(52)은 “닦고 조이고 기름칠 우리 헬기도, 헬기 탈 사람도 없어 다 정리해놨다”며 헬멧 들것 등 구조장비를 만지작거렸다.

28일 강원 춘천시에 있는 특수구조단 1항공수색대를 찾았을 때 격납고와 사무실, 당직실 어디에도 순직한 정성철 소방령(52), 박인돈 소방경(50), 안병국 소방위(38), 신영룡 소방장(42), 이은교 소방교(31)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물건, 책상 다 치워버렸다고…. 생각 안 나겠냐고.” 김광수 1항공수색대장(57)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순직자들과 2년 이상 함께 호흡을 맞췄다. 정 소방령과는 군 복무 포함해 20년 동안 함께 하늘을 누볐다. 김 대장은 다섯 명의 휴대전화 번호도, 카카오톡 메시지도 남김없이 지웠다. 그래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홀로 담배 피우면 함께 담배 피우던 모습이, 술을 마시면 옛 추억이 떠오르니까 힘들어. 죄스럽고…”라며 가슴을 쳤다.

김 대장은 1997년 특수구조단 창설 후 17년 동안 한자리를 지켰다. 18명이 살을 부대끼던 사무실에는 이제 김 대장과 새로 온 정비사 1명, 행정계 직원 4명과 특수구조단장 등 7명만 남아 있다. 1항공수색대원은 김 대장 1명뿐이다. 그는 새 헬기 도입 업무를 맡아 이곳에 남았다. 그는 “다른 직원들은 9월 초 다 인사 조치했다. 여기 있는 게 힘들 텐데 잘됐지. 헬기도 없는데…”라며 업체에서 가져온 새 헬기 설명자료를 들여다봤다.

관사에서 함께 생활하다 보니 각자의 부모와 배우자, 자녀까지 한 가족처럼 살았다. 속사정도 잘 알았다. 달력을 보던 김 대장은 “내일(29일)이 안병국 정비사 첫째아들(7) 운동회라지? 초등학교 1학년인데 아빠 없이 잘 달리려나”라고 했다.

○ “소방관 말고, 경찰요”…장래희망 바꾼 아들

“아들이 얼마 전 장래희망을 소방관에서 경찰관으로 바꿨다고 하더라고요.”

29일 오전 충북 청주시 소재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일곱 살짜리 아들을 향해 “우리 아들 1등 해!”라며 손을 흔들던 고 안병국 소방위의 부인 한모 씨(38)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한 씨는 “유치원 운동회 때 남편이 자주 와서 함께 달리기도 했어요. 아이가 아빠와 추억을 많이 갖고 있는데 사고 이후로는 저에게 아빠 이야기를 안 해요”라고 했다.

한 씨는 8월 말 춘천을 떠나 이곳에 왔다. 아들이 “춘천 싫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있는 데(청주) 가자”고 해 이사를 했다. 한 씨는 “아들이 춘천 떠올리는 것도 싫어해 유가족 정기모임이나 행사 때 데려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TV에 헬기가 나오면 유심히 쳐다보는 아들을 볼 때면 울음을 속으로 삼키며 “아빠는 훌륭한 사람이었다”라고 말해야 했다.

사고 이후 한 씨는 주민센터 가는 게 가장 힘들다고 했다. 순직보상연금, 국가유공자 지정 등에 필요한 주민등록등본, 가족관계증명서 등 각종 서류를 수시로 발급받아 여러 기관에 제출해야 했다. 한 씨는 “죽은 남편 이름을 마주하고, 그 이름을 사용해 무언가 하고 있다는 미안함에 더 힘들다”며 말을 삼켰다.

소방헬기 사고 유가족들은 세상의 무관심이 힘들다고 했다. 한 씨는 “세월호 사고는 아직도 신문과 TV에 나오는데, 이 사고는 소식을 찾아볼 수가 없다”고 했다. 그나마 친정 부모와 아이가 있어 힘을 낸다는 한 씨는 “이은교 대원 어머니는 혼자 지내세요. 아무도 안 남았는데 주변의 관심이 없어 저희보다 더 힘들 겁니다”라고 했다.

○ 외아들 잃고 직장도 잃은 어머니

“19년 전 남편도 사고로 세상을 떠나더니 하나 있는 아들마저 뭐가 급하다고 이렇게 빨리 데려가나요.”

27일 오후 서울 강서구 자택에서 만난 고 이은교 소방교의 어머니 최경례 씨(56)는 오래전 세상을 떠난 남편을 떠올렸다. 이 소방교는 아버지의 사고를 겪은 뒤 구조대원의 꿈을 키웠다. 최 씨는 “아들이 그래서 소방관이 됐는데 다른 사람 구하고 오다가 그런 일을 겪을 줄은 몰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 씨는 최근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했다. 병원 조리사로 일했던 최 씨는 아들 장례 치르느라 자리를 비운 사이 일자리를 잃었다. 사고 직후 지병인 관절염이 심해지고 최근엔 고혈압까지 생겨 생계가 막막한 처지다. 최 씨는 “집에만 있으면 아들 생각밖에 안 나니까 건강해져서 일하러 가고 싶다”고 했다.

주변의 관심이 멀어지면서 최 씨를 비롯한 유가족들은 아쉬움을 표했다. 세월호는 사고 후 특별법 제정 노력과 계속된 언론의 관심이 있지만, 헬기 추락으로 드러난 소방관의 열악한 상황 개선 문제는 여전히 관심 밖에 있기 때문이다. 고 박인돈 소방위의 부인은 “처우와 근무환경이 개선돼야 다섯 명의 죽음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청주=최혜령 herstory@donga.com / 춘천=이건혁 기자
#세월호 참사#세월호 200일#세월호 희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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