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기 대책 - 편가르기 이제 그만… 4·16 반성문 다시 써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5일 03시 00분


[세월호 2주년]당시 희생자와 동갑 1997년생 100명 - 전문가 11명의 고언

추모객 발길 이어지는 팽목항 세월호 참사 2주년을 나흘 앞둔 12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는 참사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진도=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추모객 발길 이어지는 팽목항 세월호 참사 2주년을 나흘 앞둔 12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는 참사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진도=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 “우리는 왜 참사를 막지도 못하고 참사 뒤에도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나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경기 안산 단원고 2학년생과 동갑내기인 1997년생들이 참사 2년이 지나도록 떨치지 못한 의문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인터뷰한 1997년생 100명 중 85명은 자신의 ‘인생사건’으로 세월호 참사를 꼽았다. 이들은 참사에 대한 무기력한 대응을 지켜보며 스스로가 믿고 있던 가치들이 모두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고 정부와 정치에 대한 불신을 떨칠 수 없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

정치·사회·행정·해양·안전·언론 분야 전문가 11명은 ‘세월호 참사 해결’을 위해 “우리 사회가 반성문을 고쳐 써야 한다”고 진단했다. 당시 한국 사회가 분노라는 감정의 바다에 또 한 번 침몰하면서 참사 원인을 밝혀내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현실적인 대응에 사실상 실패했다는 것을 냉정하게 돌아보고 제대로 반성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참사 뒤엔 대책 없는 분노뿐


2014년 4월 16일 참사 이후 우리는 무엇을 했을까. 시신 인양과 안타까운 유가족 소식이 이어지는 가운데 우리 사회는 슬픔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슬픔은 곧 분노로 전이됐다. 선장과 선원의 무책임, 정부와 해경의 대응에 대한 비판이 줄을 이었다. 세월호를 운영한 청해진해운과 그 실소유주인 유병언 일가에게 분노를 쏟아내면서 추격전도 시작됐다. 홍은희 명지대 디지털미디어학과 교수는 “그때 우리 사회는 이성적, 합리적 접근보다는 감정 표출에 집중하면서 가해자가 있다는 틀이 짜였고, 유병언을 잡아내는 일 등에 분노의 감정이 쏠렸다”고 진단했다.

속수무책으로 구조를 기다리다 침몰하는 배를 벗어나지 못한 희생자. 그렇게 가족을 잃은 이들의 애끊는 슬픔. 이를 목격한 국민들이 분노의 감정에 빠져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이 냉정한 상황 분석을 막아선다면 문제가 된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문제가 불거지면 그걸 해결하기 위한 절차와 시간이 필요한데 우리 사회는 특유의 조급증 때문에 그런 시간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고 분석했다. 사고를 조사하고 각자 의견을 가진 이들이 모여 논의를 벌이며 잘 보이지 않는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고 의견을 조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각 관계자들이 국민 분노를 잠재우는 데 급급해 이걸 모두 건너뛰었다는 것이다.

○ 진단 없이 보여주기식 대책


세월호가 비교적 노후(선령 21년)한 배였다는 문제가 제기된 가운데 여객선 등의 선령 제한을 강화한 것은 감정적인 대응의 결과를 보여준다. 공길영 한국해양대 항해학부 교수는 “세월호는 노후해서 침몰한 게 아니다. 단순히 선령이 오래됐다고 침몰하지도 않는다”며 “여론에 등 떠밀린 결정이다”고 지적했다.

참사 한 달여 만에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내놓은 ‘해경 해체’ 같은 처방도 분노와 책임을 떠넘기는 대응에 불과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전영한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해경 해체 같은 조치는 ‘뭔가 하고 있다’는 것을 눈에 잘 띄도록 보여준 정치적 프로파간다(선동)에 불과했다”고 혹평했다. 이런 극단적 처방은 결과적으로 비슷한 사고가 또 일어났을 때의 대응력을 오히려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문제가 된다. 전 교수는 “재난 해결은 현장이 중심이 돼야 하는데 상위 기관을 만드는 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해결책이 아니다”고 말했다.

○ 정쟁 일삼는 하급 정치


참사 때문에 정치의 중요성을 자각하게 됐다는 1997년생들의 얘기처럼 참사를 정쟁으로 몰고 간 정치인들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박종희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미국은 9·11테러 이후에 꾸린 위원회에서 당파성을 벗어난 토론 등을 거쳐 사회 전체가 수긍할 수 있는 결과물을 얻어낸 반면에 우리는 정치권이 편 가르기 식으로 대응하면서 국민들의 무력감과 실망감을 키운 것”이라고 얘기했다.

사회는 분노를 떠넘긴다고 해서 발전하는 게 아니고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책을 찾으려 들 때 비로소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은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부분이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민들은 큰 사고를 겪으면 뭔가 큰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사고는 사소한 원인이 겹쳐 발생한다”며 “해경이 적극적으로 구조에 나서지 못했던 구조적인 이유를 알아보고 상습적 과적을 방치했던 ‘관피아’ 척결은 제대로 이뤄지는지를 꾸준히 지켜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대안을 찾는 반성이 없다면 세월호 참사의 시계는 ‘2014년 4월 16일’에 계속 멈춰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잠재된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반성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편 해양수산부는 7월에 세월호를 인양하기 위해 다음 달부터 뱃머리(선수)를 들어올리는 등 본격적인 작업에 돌입한다.

김도형 dodo@donga.com·유원모·한우신 기자
#세월호#팽목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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