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국가안보실장이던 김장수 주중 대사(사진)는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과 직접 6, 7차례 전화로 사고 상황을 보고하고 지시도 받았다”고 밝혔다.
김 대사는 28일 베이징(北京) 주중 대사관에서 가진 베이징특파원단 간담회에서 “오전 10시경 첫 보고를 서면으로 했다. 6, 7차례의 유선 보고는 대통령과 직접 통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사는 동아일보와 별도 인터뷰에서는 유선 보고가 ‘비화(秘話) 휴대전화’로 이뤄져 통화 당시 대통령이 어디에 있었는지, 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다만 “서면 보고를 행정원 등을 통해 관저로 보내 전달하도록 했기 때문에 관저에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김 대사는 오전과 오후에 걸쳐 통화하는 동안 대통령의 음성이나 음색에 변화가 있었는지를 묻는 질문에 “변화가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또 세월호 참사에 대면 보고가 아닌 서면과 유선 보고를 한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판단에 의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당시 청와대 상황실이 너무 복잡해 (대통령이) 와도 설명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사는 첫 보고가 서면으로 이뤄진 이유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청와대에 물어보라. 내가 대답하기 부적절하다”고 했다. 하지만 간담회가 끝난 뒤 추가로 보낸 답변에선 “유선과 서면 보고의 (시간) 차이는 10분 이내이고 유선보다는 서면 보고가 낫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대면 보고가 없어 사고의 심각성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이어서 김 대사의 판단은 비판의 소지가 있다.
김 대사는 박 대통령의 유선 지시 중 “유리창을 깨서라도 구하라는 말은 들은 것 같다”며 “구조 인원 숫자가 틀리게 보고된 것에 대해서는 안보실장으로서 전에는 들어보지 못했을 만큼 호되게 질책을 받았다”고 말했다.
유리창을 깨서라도 구하라는 지시가 현장에 전달됐는지에 대해서는 “했다면 중대본(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으로 했을 텐데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중대본에 처음 나와 “구명조끼를 입은 학생들을 발견하기 힘듭니까”라고 질문한 것은 사고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서가 아니냐는 지적에 김 대사는 “‘이노슨트 와이(innocent why)’ ‘순수하게 왜 그러냐’는 뜻으로 물은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당시는 세월호가 완전히 뒤집어진 것이 확인된 후여서 박 대통령을 변호하기 위한 답변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박 대통령이 오후 3시 중대본 방문 지시를 내리고 2시간 이상 지나 도착한 것에 대해 김 대사는 “중대본에서 상황을 정리하고 준비하느라 늦어진 것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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