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열발전 과정에서 지진이 빈발할 수 있음을 경고한 용역결과를 보고받고도 정부가 근본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은 성과주의에 매몰돼 안전을 뒷전으로 미루는 구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정부는 포항 지열발전소가 본격적인 상업화 단계가 아니라 민간 사업단 주도의 연구개발(R&D) 과정이어서 직접적인 관리 책임은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시험단계일수록 탐사와 시추 과정을 엄격히 통제하면서 안전을 최우선시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북 포항은 2011년 4월 지열발전 부지로 선정됐다. 이곳은 경주, 경남 양산, 부산 등지와 연결된 활성단층지역이어서 지진 위험이 크다는 지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열발전은 지열에너지가 센 지역에서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최적지로 꼽혔다.
지진 가능성을 경고하는 목소리는 2008년 용역보고서 이후 국내외에서 수차례 나왔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2012년 ‘지열에너지의 환경성 평가 및 환경친화적 이용방안’ 보고서에서 지진 유발을 지열에너지 활용 시 위험 요인으로 꼽았다.
물 주입 시 지진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점을 직접적으로 경고한 논문도 적지 않았다. 2015년 학술지 ‘지구물리와 물리탐사’에 발표된 ‘유발지진 관측과 활용’ 논문은 강한 압력으로 물을 주입해 지층을 깨뜨리면 기존 단층이 활성화돼 더 큰 지진이 촉발될 수 있다고 했다.
스위스 바젤에 지어진 지열발전소는 물 주입을 시작한 2006년 12월부터 2007년 3월까지 3개월 사이에 규모 0.7 이상의 지진이 200번 이상 발생했다. 3년에 걸친 조사 끝에 지열발전소 건설은 2009년 중단됐다. 2009년 11월 스위스 연구팀은 계산상 최대 규모 5.7의 지진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독일 란다우에 지어진 지열발전소도 2009년 규모 2.7 지진이 발생한 뒤 가동이 사실상 중단됐다.
사업단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고 정부에 관련 내용을 보고했지만 실질적인 지진 방지 대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당시 사업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사업단은 오히려 지진이 발생했던 스위스 바젤과 독일 란다우 발전소의 기술자를 해외 자문단에 포함시키고 수억 원대의 자문료를 지급하기도 했다.
2013년 포항 지열발전소 사업단이 작성한 연차 보고서를 보면 ‘소규모 진동의 위치와 빈도를 해석한 뒤 물 주입 빈도를 조절해 최적의 효율을 얻게 해야 한다’고 돼 있다. 물 주입으로 생기는 진동을 측정하는 이유가 지진 위험을 확인해 대비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가장 효과적으로 땅에 물을 넣어 에너지 효율을 높이려는 것이었던 셈이다.
사업단은 이후 2016년 12월 본격적으로 물을 주입하기 전 ‘미소 진동 관리 신호등 체계’라는 매뉴얼을 만들었다. 여기에는 지진 규모 단계별로 주입하는 물의 양을 줄이거나 물 주입을 중단하는 방법과 보고 체계가 담겼다. 해당 체계를 설명한 사업단 문건에는 안전성 보장과 민원 문제 최소화가 목적이라고 돼 있다.
2017년 4월 14일까지 진행된 3차 물 주입 직후 규모 3.1의 지진이 발생한 상황에서 4개월 뒤 다시 4차 물 주입을 강행하기까지 지진 발생 가능성에 대한 검토가 충분했는지도 의문이다. 사업을 주관한 넥스지오의 윤운상 대표는 “물 주입을 중단하고 배수하는 조치를 통해 소규모 지진이 바로 멈췄고, 이후 기존 연구를 재검토하고 해외 연구진과 상의했다”고 설명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작성한 내부 문건인 ‘포항 지열발전 관련 국가배상에 대한 법률자문 보고’에서 해당 사업은 공무원의 직무 집행이 아니라 일종의 계약이기 때문에 민사소송의 대상이고, 이로 인해 국가배상 요건은 충족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또 지진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주의 의무를 게을리한 것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정부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2017년 4월 규모 3.1의 지진이 발생한 사실이 산업부까지 보고된 만큼 정부가 완전히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가 사업 추진 과정에서 지진이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았다면 기상청 같은 지진 관련 기관과 협의하는 등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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