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주로에 꼬리 충돌뒤 튀어올랐다 쾅… 화염 뚫고 필사 탈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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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기 美서 착륙사고]탑승객들이 전하는 사고 순간

사고 발생 12시간가량이 지난 6일 오후 11시(한국 시간 7일 오후 3시) 샌프란시스코 공항. 몇 대의 서치라이트가 활주로 한 곳을 비추는 가운데 빨간 등을 켠 비상 차량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공항 국내선 환승구의 ‘게이트 45B’ 너머로 부서진 기체를 탐색하고 주변 잔해를 청소 수색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작업은 자정이 넘어서까지 계속됐다. 분주하게 청소를 하던 한 공항 직원은 “사고 때문에 하루 종일 모두 힘들었다”고 말했다.

7일 0시가 지난 시간, 공항 탑승장 곳곳에서는 이번 사고로 각지에서 뒤늦게 도착한 비행기들이 마음 급한 승객들을 토해냈다. 승객 수십 명은 공항에서 밤을 지새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50대 초반의 한 중국계 미국인은 “부모님을 뵙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왔다가 사고 비행기의 화재 진압 장면을 봤다”며 “검은 연기가 공항 상공을 뒤덮었다”고 사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공항에서는 7일 오전 2시경까지 고무 타는 냄새가 진동해 전날 사고 비행기 화재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7일 새벽 이번 여객기 사고의 부상자 중 가장 많은 53명이 이송된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 응급센터 앞에는 미국은 물론이고 한국 일본 기자들이 밤을 새우며 취재 활동을 벌였다. 응급센터 입구에는 2명의 경찰이 지켜 1층 대기실까지만 출입이 가능했다. 입구를 지키던 경찰은 “대부분의 부상자들은 응급 처치를 받은 후 입원이 필요할 경우 위층 병실로 올라갔다”고 말했다. 이 병원에는 어린이 1명을 비롯해 6명의 위독한 환자가 입원해 있다.

사고 여객기 탑승객들은 사고 항공기가 활주로 시작 지점에서 꼬리 부분이 충돌한 후 610m 정도를 방향을 잡지 못한 채 동체를 바닥에 끌며 미끄러지다 활주로 왼쪽으로 이탈한 뒤 멈췄다고 사고 당시의 아찔했던 순간을 전했다. 충돌 지점에서 착륙 지점까지 활주로 곳곳에는 사고기 파편으로 보이는 잔해들이 널려 있었다.

탑승객들은 “사고기가 정상적인 상태로 착륙을 시도하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샌프란시스코∼인천 왕복 비행기에 173회 탑승했다는 라유진 씨는 “착륙 직전 비행기 고도가 너무 낮았다”며 “활주로 충돌 후 비행기가 튕겨 올랐다가 다시 바닥을 친 후 방향을 잃고 앞쪽으로 미끄러지다 옆으로 이탈했다”고 말했다.

아시아나 “죄송합니다” 아시아나항공의 윤영두 사장(가운데) 등 경영진이 7일 오후 서울 강서구 오쇠동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 일어난 사고에 대해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윤 사장은 “탑승객과 그 가족을 비롯한 국민 여러분께
 커다란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하다”고 밝혔다. 사진공동취재단
아시아나 “죄송합니다” 아시아나항공의 윤영두 사장(가운데) 등 경영진이 7일 오후 서울 강서구 오쇠동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 일어난 사고에 대해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윤 사장은 “탑승객과 그 가족을 비롯한 국민 여러분께 커다란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하다”고 밝혔다. 사진공동취재단
그는 “비행기 정지 1, 2분 후 조종사가 비상상황이니 대피하라는 방송을 했다”며 “충돌 10∼15분 후 화염이 기내에 밀려들어 왔다”고 전했다.

아내, 생후 15개월 아들, 장인 장모와 함께 사고기에 올랐던 이장형 씨(32)는 “비행기가 충돌 후 멈추는 순간까지 기내에서는 경고 방송이 나오지 않았다”며 “오히려 ‘안전하게 착륙했으니 모두 자리에 착석해 달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비행기 창문을 통해 바깥쪽에서 불길이 보였고 연기가 안쪽으로 스며들어 탈출했다”며 “무사한 탑승객 조사가 모두 끝날 때까지 5시간 동안 공항의 냄새나는 비좁은 공간에서 대기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활주로에 있던 다른 항공기에서 사고 현장을 목격한 크리스티나 스탭척 씨는 “바퀴가 미끄러지면서 흔들렸다”며 “동체가 돌면서 동체 여기저기서 파편들이 계속 떨어져 나왔다”고 밝혔다.

사망자 2명은 비행기 내부가 아닌 외부 잔해 사이에서 발견됐다. 조앤 화이트 샌프란시스코 소방서장은 “시신이 비행기에서 튕겨 나온 것인지 나중에 누가 바깥쪽으로 옮겨 놓은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고 밝혔다.

사고 후 구조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대부분의 승객은 비상 슬라이드를 이용해 사고기에서 빠져나왔다. 일부 승객은 비상 슬라이드가 작동하지 않자 비행기에서 뛰어내리기도 했다. 승객들이 모두 여객기를 빠져나와 한숨을 돌리는 순간 비행기 내부에서는 화염이 솟았다. 활주로 충돌에 의한 충격으로 연료에 불이 붙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했다.

존 핸스먼 매사추세츠공대 항공학과 교수는 “항공사들은 위급 상황 때 승객들을 90초 안에 탈출시키도록 훈련을 받는다”며 “이번 사고에서 ‘90초’ 규칙이 잘 지켜진 것 같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신석호·워싱턴=정미경 특파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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