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후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망천리. 농가주택 곳곳에서 지진 피해 복구가 한창이었다. 일손이 부족한 농촌이라 해병대원 20여 명이 투입돼 무너진 담장 등을 치우고 있었다. 이를 바라보던 농민 이모 씨(65·여)의 얼굴에 고마움과 안도감이 엿보였다. 하지만 불안한 기색을 감추진 못했다. 이날 망천리 일대의 액상화 현상이 공식 확인됐기 때문이다.
정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진앙 반경 10km 이내 10곳을 시추 조사한 결과 5곳이 액상화 발생 가능 지반으로 파악됐다고 이날 밝혔다. 액상화란 지진으로 지반이 흔들리면서 지하 모래층에 지하수 등이 유입돼 땅이 물렁해지는 현상이다. 지표면으로 물이 솟아오르며 흙이 봉긋하게 올라오는 ‘샌드·머드 볼케이노(모래·진흙 분출구)’ 현상이 나타난다. 국내에서 지진 액상화 현상이 나타난 건 포항이 처음이다.
특히 5곳 중 망천리 논 지역은 액상화지수(LPI)가 6.5였다. 5.0을 넘어 ‘높음’으로 분류됐다. 건물 등 구조물을 설치할 때 액상화 대책이 필요한 수준이다. 나머지 4곳은 ‘낮음’ 단계였다. 중요 구조물을 설치할 때 연약지반을 걷어내는 등 상세한 조사가 필요한 곳이다.
중대본은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근거로 “액상화가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익수 경남대 교수(한국지진공학회 이사)는 “액상화 발생이 구조물의 피해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10곳은 더 이상 피해 진척이 없고 구조물 기초에도 피해가 가지 않았다. 안정화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망천리 주민들의 걱정은 여전하다. 이 씨는 “지반이 물렁해져 트랙터가 빠질 수 있으니 미리 대비도 해야 할 것 같고 흙 성질이 바뀌어 아예 벼농사를 짓지 못할까 봐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오래된 농가 주택에 대한 불안감도 더욱 커졌다. 홍모 씨(57·여)는 “원래 지진 나기 전에 이사 갈 계획이 있었다. 앞으로 아무도 집을 사려고 하지 않을 텐데 이사도 못 가고 계속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 홍 씨는 “액상화가 발생한 곳은 물 위에 집 짓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는데 새로 집을 짓지도 못할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낮음’ 판정을 받은 지역의 분위기도 비슷했다. 남구 송도동에서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운영하는 강모 씨는 “주변이 복개천이라 지반이 약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부는 괜찮다고 하지만 주민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흥해읍 일대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동공(洞空) 여러 개가 발견됐다. 동공은 땅속의 빈 공간을 말한다. 경북도와 포항시에 따르면 경북도지진재해원인조사단이 3차원 지표투과레이더(GPR)를 통해 조사한 결과 흥해읍 일대 땅속에서 크고 작은 공간 9곳이 확인됐다. 큰 것은 깊이 1m, 폭 1.5m이고 나머지는 수십 cm∼1m 정도다. 일부 동공에서는 물이 흐르고 있다.
조사단은 지진 연관성 등 정확한 동공 발생 원인을 조사 중이다. 지진 충격으로 상·하수도관이 새면서 발생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또 지열발전소의 지반 내 물 주입으로 인한 지진 영향 여부에 대해서도 정부 조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최종 조사 결과는 이달 말 나올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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