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살 쏟아지는 줄”…‘산불과의 사투’ 동해시 석두골

  • 뉴스1
  • 입력 2019년 4월 5일 17시 44분


5일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에서 발생한 산불이 번진 동해시 망상동 석두골의 한 주택에 쌓여진 소금자루가 불에 탄 채 휑하니 놓여있다. 2019.4.5/뉴스1 © News1
5일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에서 발생한 산불이 번진 동해시 망상동 석두골의 한 주택에 쌓여진 소금자루가 불에 탄 채 휑하니 놓여있다. 2019.4.5/뉴스1 © News1

“바람을 따라 산 아래로 불길이 내려오는데 마치 불화살이 쏟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71가구, 총 11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강원 동해시 망상동에 있는 이 마을은 일명 석두골로 불린다.

망상해수욕장을 배경으로 민박이 주로 있는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가 밤사이 산불과의 전쟁터로 변했다.

인근 강릉 옥계면에서 발생한 산불이 5일 0시48분쯤 망상동 인근 야산으로 번지며 단 몇 시간 만에 마을이 초토화 됐던 것.

동해시에 따르면 이번 산불로 석두골 내 주택 10여 동과 차량 2대가 전소됐다.

지난 밤 내내 산을 타고 상가 쪽으로 내려오는 불길을 막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는 신기수 동해보양온천 컨벤션호텔 총지배인이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팔을 움직일 때마다 옷에서 짙은 탄내가 풍겨왔다.

신씨는 “산을 타고 내려오며 전화를 받다가 잠시 뒤돌아보면 불길이 큼직하게 한 걸음, 또 잠깐 앞을 봤다가 뒤돌아보면 한 걸음 다가오는 등 바람을 타니 무섭게 내려왔다”며 “불티가 조금 스치기만 해도 그곳에서 새로운 불길이 일어났다”고 밝혔다.

불티가 강풍을 타고 마치 불화살처럼 쏟아져 내려 사람이 그 흐름을 막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5일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에서 발생한 산불이 번진 동해시 망상동 한 실버타운의 천장이 화재의 영향으로 검게 구을려 있다. 2019.4.5/뉴스1 © News1
5일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에서 발생한 산불이 번진 동해시 망상동 한 실버타운의 천장이 화재의 영향으로 검게 구을려 있다. 2019.4.5/뉴스1 © News1
신씨는 “민박이 많아 밤중에 아는 어르신들이 주무시는 바람에 화를 당할까 걱정돼 집집마다 다니며 문을 두드려 대피하라고 알렸다”며 “불길이 심해 내려오던 중에 한 축사는 문이 닫혀있던데 소들이 다 불에 타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됐다”고 말했다.

석두골 안쪽에서 만난 해당 축사를 운영하는 정연걸씨(77)는 “자고 있는 와중 아는 동생이 ‘형님 불이 났어요!’라고 소리쳐 나와 보니 실버타운 뒤쪽 산을 따라 시뻘건 불길이 내려오고 있어 옷도 입는 둥 마는 둥 정신없이 도망쳤다”며 “다행히 대피했다가 돌아왔을 때 사료보관소는 완전히 탔지만 축사는 일부만 타 소들이 무사한 것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밝혔다.

정씨의 옆집에 사는 한 주민도 “연기가 얼마나 심한지 죽는 줄 알았다”며 “불로 수도관이 녹아내려 물도 나오지 않아 씻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근에 있던 소방대원은 “축사 주변에 짚이 많아 언제 불씨를 품고 살아날지 모르기에 주변에서 잔불 제거와 감시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을회관에 모여있던 일부 주민들은 서로 산불 상황을 공유하며 “거기도 탔어?”, “나 참…” 등 낮은 탄식을 뱉어냈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주인이 사라진 한 주택 마당에 쌓여있던 소금자루는 불에 타 검게 변색됐다.

5일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에서 발생한 산불이 번진 동해시 망상동 석두골의 한 주택에서 LPG통이 불에 그슬린 채 남아있다. 2019.4.5/뉴스1 © News1
5일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에서 발생한 산불이 번진 동해시 망상동 석두골의 한 주택에서 LPG통이 불에 그슬린 채 남아있다. 2019.4.5/뉴스1 © News1
다른 주택에서는 LPG통이 검게 그을린 채 그대로 남아있어 화재 당시의 긴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석두골 깊숙이 위치한 한 실버타운은 화재로 지붕과 옥상 일부가 타들어가 폐자재를 치우는 등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이 건물은 뒤편 야산을 따라 내려온 산불의 불티가 지붕으로 번져 상주하던 노인 120명이 긴급 대피해야 했다.

건물 10층 일부 방들의 천장은 화재로 까맣게 타들어가거나 그을려있었고, 작업자들은 보수작업으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그 밖의 층에는 입주자들의 짐들이 한곳에 몰려있는 등 갑자기 닥친 재난 수습에 여념이 없었다.

실버타운의 관계자는 “지금은 정신이 없어 상황을 수습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며 “건물 보수가 끝나는 대로 정상 운영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동해=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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