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우리 곁의 막힌 비상구·불법주차 ‘도돌이표 참사’ 부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5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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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시 피난 통로로 이용하는 게 건물의 비상구(非常口)다. 하지만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현장의 2층 여성 사우나 비상구는 ‘벽’이었다. 비상구 앞은 누가 봐도 목욕용품 수납장이었다. 비상구 표시등은 꺼져 있었고 손잡이는 보이지 않았다. 이 비상구만 원래 목적대로 사용됐어도 여성 사우나에서 숨진 20명의 희생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어제는 겨울비가 내리는 가운데 참사 희생자 19명에 대한 영결식이 거행됐다. 유족들의 아픔이야 필설로 형용할 수 없겠지만, 아주 사소한 기본만 지켰더라도 대형 참사는 막을 수 있었으리란 아쉬움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화재가 난 건물은 경보-피난-소화 3대 설비가 동시에 먹통이었다. 1층 주차장의 화재 감지기는 작동 불량이었고 피난 유도등은 켜지질 않았다. 지난달 소방점검에서는 1층 소화기의 사용기한인 10년이 넘었으니 바꾸라고 했지만 무시됐다.

대형 화재가 날 때마다 스프링클러 등 방화시설 미비, 불법 주차에 따른 소방차 출동 지연, 비상구 문제가 도돌이표처럼 부각된다. 당장 영화관과 목욕탕 등 다중 이용시설에 들어가서 비상구의 위치를 확인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비상구 앞에 물건을 쌓아두면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유사시 비상구가 유일한 생명줄이고 그런 사태는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없는 한 비상구는 벽일 수밖에 없다. 주기적으로 소방점검을 한다지만 그때뿐이다.

제천 화재에서 사다리차의 인명 구조가 30분 이상 늦어진 것은 현장의 불법 주차된 차량 때문이었다. 불법 주차로 꽉 막힌 상황에선 긴급 견인도 쉽지 않다. ‘잠깐이면 되겠지’ 하는 불법 주차가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 전환을 유도해야 한다. 화재 시 미국은 긴급 견인에 따른 차량 훼손은 보상 책임이 없지만 우리는 현장 소방관에게까지 책임을 묻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머뭇거리다 골든타임을 놓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주정차특별금지구역 지정 등 관련 법안은 지난해부터 3건이나 발의됐지만 아직도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안전은 말로만 외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잦은 훈련으로 돌발상황 대처 요령이 몸에 배어야 한다. 지금처럼 대형 사고가 나면 종합대책은 중앙정부가 발표하고 집행은 일선 기관이 알아서 하라고 방치해서는 또 다른 참사를 예고할 뿐이다. 사고 예방 대책과 훈련이 말단의 실핏줄까지 철저하게 퍼지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비상구와 소방도로는 확보됐는지, 소화기는 제대로 작동하는지 기본부터 챙기는 것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대형 참사의 악순환 고리를 끊는 길이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제천 화재 희생자#불법주차#잠깐이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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