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가-대로 근처 이면도로 ‘고질병’… 출동방해 과태료 대상 포함도 안돼
처벌 강화 법안 3월 발의뒤 깜깜… 제천 화재 참사 되풀이될 위험성
24일 오후 서울 강동구 성내동 주택가 이면도로. 도로마다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주차 차량 탓에 어른 2명이 나란히 걷기 어려웠다. 이곳에는 지은 지 30년이 넘은 낡은 다세대주택과 상가가 밀집해 있다. 한 건물에서 불이 나면 크게 번질 수밖에 없다. 그만큼 초기 진화가 중요하다.
하지만 소방차가 들어갈 최소 공간(폭 7∼8m)이 확보된 곳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일반 승용차(2.5m)도 오가기 어려운 곳이 많았다. 모두 주정차 차량 탓이다. 양모 씨(57·여)는 “20∼30년 전부터 이렇게 차량을 세웠다. 소방차가 들어오기 힘들다는 건 알고 있지만 주차장이 없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큰길 주변도 비슷하다. 왕복 10차로인 천호대로 근처 이면도로는 입구부터 불법 주정차 차량으로 혼잡했다. 성내전통시장과 연결되는 천호대로162길은 상가 이용객이 세워놓은 차량과 진출입 차량이 늘 뒤엉킨 상태다. 소방차는커녕 보행자도 차량을 피해 ‘곡예 보행’을 해야 할 정도다. 불법 주정차를 막기 위해 시장 근처 주택가에는 거주자 전용 주차공간이 있다. 하지만 이곳을 지나는 차량들은 ‘S’자 운행을 해야 한다. 거주자 차량과 맞은편으로 나란히 불법 주정차 차량이 서 있기 때문이다.
21일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때 소방차가 처음 도착한 건 신고 후 7분이 지나서다. 출동 거리는 3.2km. 하지만 도착 후 30분가량 지나서야 본격 구조작업이 시작됐다. 가장 큰 원인은 불법 주정차였다.
소방청이 밝힌 화재 때 초기 진압과 인명구조 ‘골든타임’은 5분. 이 시간이 지나면 화재 확산 속도가 빨라져 현장 진입이 쉽지 않다. 지난해 화재 1건당 사상자 수는 3∼5분 출동 때 0.75명이지만 5∼10분 때 2.33명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소방당국이 교육과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5분 내 도착은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60%대에 머물러 있다.
불법 주정차의 원인은 고질적인 주차난이다. 서울 지역 주차장 확보율은 129.2%, 주택가는 100.5%였다. 숫자만 보면 주차공간이 남는다. 하지만 지역별 편차가 크고 지방자치단체는 민원을 이유로 불법 주정차 단속에 소극적이다.
반면 유럽은 길이 좁고 일방통행도 많지만 불법 주정차에 엄격하다. 영국에서는 ‘화재와 구출 서비스법’에 따라 소방관은 차량 소유주 동의 없이 차를 옮기거나 부술 수 있다. 또 런던을 제외하고 차도 가장자리나 인도에 걸쳐 차를 세우는 게 허용됐지만 이를 개정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국내에선 내년 5월부터 골든타임 확보를 위한 새로운 소방기본법이 시행된다. 소방차 출동을 방해하면 운전자에게 과태료 200만 원이 부과된다. 하지만 이는 상대 차량이 도로 위를 달릴 때만 해당된다. 불법 주정차 차량은 제외다. 도로교통법상 주정차 위반 과태료 4만∼6만 원이 전부다. 뒤늦게 골목길 모퉁이나 소방시설 주변을 ‘주정차 특별금지구역’으로 정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올 3월 발의됐다. 현행보다 2배 이상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개정안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상정된 뒤 이렇다 할 논의도 없다.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물론 불법 주정차가 필요 없게 충분한 주차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더불어 불법 주정차가 누군가의 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줄 수 있다는 사회적 경각심을 갖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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