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때 ‘최초 신고 전 1시간’의 구체적인 정황이 동아일보 취재 결과 상당부분 확인됐다. 29일까지 건물주 이모 씨(53·구속), 건물관리인 김모 씨(66), 여직원 양모 씨 등 10여 명의 핵심 증인을 만나고 폐쇄회로(CC)TV 확인한 결과다. 취재 결과 유족들이 주장하는 오후 3시 25분 화재가 발생해 진압에 나섰다는 내용은 오후 3시 52분 상황으로 확인됐다. ▽오후 2시 42분
액화석유가스(LPG)충전소 이모 직원(59)이 차량을 타고 스포츠센터 건물 1층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 옆에 설치된 LPG통에 가스를 충전하기 위해서다. 이 직원은 근처에서 천장 작업을 하고 있던 김모 과장(51)을 봤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사다리에 올라 막 천장을 뜯어내고 있었다. 이 씨가 “바쁘시죠”라며 말을 건네자 김 과장이 “작업하고 있어요”라고 답했다. ▽오후 3시
2층 여탕에 가기 위해 권모 씨(36·여)가 주차장에 차량을 주차했다. 권 씨는 “사다리에 올라가 있는 한 남성이 뜯겨진 천장 안에 있는 전선을 손으로 만지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오후 3시 10분
이 직원이 가스 충전을 마치고 주차장을 떠났다. 그는 “차를 타고 이동하기 전까지 김 과장은 계속해서 사다리 위에서 무언가 작업을 이어갔다”고 말했다. 차량이 떠나고 곧이어 김 과장이 작업을 중단한 뒤 사다리를 치운다. ▽오후 3시 27분
김 과장이 작업한 천장 부근에서 10초간 3, 4차례 불꽃이 발생하는 게 CCTV에 포착됐다. 천장 작업을 끝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천장 내부에서 연소가 이미 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국과수 감식 결과가 나와야 김 과장의 작업과 불꽃 사이의 정확한 인과관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 3시 30분경
이때까지도 스포츠센터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이상한 낌새’를 감지하지 못했다. 주차장을 지나 1층으로 들어간 이모 씨(54·여)와 김모 씨(68·여)는 모두 “3시 반쯤에는 주차장에서 천장 공사하는 사람은 없었다. 불길과 연기 어떤 것도 보이지 않고 주차된 차량들만 있었다”고 말했다. ▽오후 3시 51분
천장 내부에 불이 붙은 모습을 본 최초 목격자가 등장했다. 2층 남탕에서 목욕을 마치고 내려오던 구모 씨(25)는 천장 한 곳에서 작은 연기가 나오는 것을 봤다. 연기가 나는 곳으로 이동하자 성인 남성이 들어가기 충분한 크기로 천장이 뚫려있었다. 올려다보자 동그란 형태의 불과 천장 좌우로 내려오는 연기가 보였다.
약 20초간 천장을 지켜본 그는 “4~5명이 함께 담배를 피는 양의 연기가 뿜어져 나왔고 가스레인지에서 나오는 크기의 불꽃이 보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날씨가 워낙 추웠고 주차장 천장 공사하는 모습을 자주 봤기 때문에 ‘무언가 녹이는 작업’을 한다고만 생각하고 자리를 떴다. ▽오후 3시 52분
뒤따라 목욕을 마친 뒤 1층 입구에서 나온 A 씨(72)는 매캐한 냄새를 맡고 불길이 커져버린 천장을 목격했다. 천장에서 ‘펑’하며 무언가 터지는 소리도 들었다. 화재를 인지한 그는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 “불이 났다”고 소리쳤다. 1층 카운터 여직원 양모 씨가 주차장으로 뛰어나왔다.
마침 건물 관리인 김 과장과 김 부장도 지하 1층에서 올라왔다. 김 부장은 “김 과장이 지하실로 평소와 같이 내려왔는데 그의 몸에서 ‘열 받은 냄새’가 나 함께 1층으로 뛰어 올라갔다”고 진술했다.
유족들은 “지인 A 씨가 오후 3시 25분경 이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 조사와 증언들에 따르면 A 씨가 목격한 상황은 오후 3시 52분경 벌어진 일로 확인됐다. ▽오후 3시 53분
카운터 여직원 양 씨가 김 과장에게 소화기를 전달했으나 고장 난 소화기였다. 다른 소화기를 찾아 건넨 뒤 다시 카운터 안으로 들어가 다급하게 119에 신고했다. A 씨는 주차한 본인 차에 탑승한 뒤 주차장을 황급히 빠져나왔다. 불길이 순식간에 커져버렸기 때문이다. 오후 3시 30분경 4층 헬스장 IPTV를 고치러 온 통신사 직원도 매캐한 냄새를 맡고 황급히 차량을 근처 마트로 이동시켰다. ▽오후 3시 54분
119에 신고한 뒤 양 씨는 1층 사무실로 들어가 건물주 이 사장에게 불난 사실을 알렸다. 이 사장과 김 과장, 김 부장이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소화기를 주차장 천장에 쐈다. 하지만 이미 천장 전체로 번져버려 불길이 쉽게 잡히지가 않았다.
김 부장이 일부 천장을 떼어내 불길을 제압하려 했지만 불길이 천장 아래로 떨어지며 차량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김 부장은 “1층에 올라왔을 때 이미 천장판 아래로 벌건 불길이 쭉 펼쳐져 보였다”며 “불똥과 열기가 너무 강해 더 이상 진압이 불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이후 스포츠센터 건물은 걷잡을 수 없는 불길에 휩싸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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