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four)에버육아]<2>다자녀 집은 매일이 쓰레기 대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6일 09시 11분


분리수거함에 쓰레기를 버리는 첫째
분리수거함에 쓰레기를 버리는 첫째
이제 제법 머리가 큰 첫째는 재활용품을 구분해 버릴 줄 안다. 요구르트를 먹고 난 뒤 빨대와 뚜껑(은박지나 비닐), 용기를 따로 분리해 버리는 법을 알려줬더니 금세 익혀서는 재질별 분리수거함에 넣었다. 새로운 쓰레기는 “엄마, 이건 어디다 버려요?”하고 물어봤고 “플라스틱”하면 한글을 읽어 해당 수거함에 버렸다. 어느 날인가는 어린이집에서 자원재활용의 의미에 대해 배웠는지 “지구를 살리려면 분리수거해서 버려야 해요”라며 대견한 소리도 했다.

최근 벌어진 재활용품 수거 대란을 보면서 우리 집 쓰레기 발생량을 돌이켜봤다. 머릿수가 많은 다자녀 집은 당연히 쓰레기 발생량도 많다. 더구나 맞벌이 부부이다 보니 사다 먹을 때도 많고 그때그때 쓰기 좋게 나눠놓은 물품을 살 때가 많아서 배출 일회용품은 맞벌이가 아닌 다자녀 가정의 배에 가깝다.

결혼하고 나서야 우리 생활에서 배출되는 일회용품이 그렇게 많다는 걸 처음 알았다. 친정 엄마께선 ‘학생은 공부에 집중해라, 다른 일은 엄마가 알아서 할 테니’ 하는 주의라 본인 방 청소 외에 쓰레기 분리수거, 요리, 빨래 등 집안일을 거의 시키시지 않았다. 물론 집에서 재활용품을 분리해 버리긴 했지만 모인 재활용품과 폐기물을 내가 내다버리진 않으니 난 얼마 동안 얼마만큼의 쓰레기가 쌓이는지 알지 못했다.

주부가 되어 가사의 주무를 맡게 되면서 처음 생활쓰레기의 실체를 접했다. 내가 먹는 음료수, 제품 포장, 빵을 먹고 남은 비닐까지 모두 지나면 쓰레기가 됐다. 배송 포장 쓰레기는 그 양이 엄청나서 택배라도 도착하는 날이면 단번에 분리수거함의 절반이 가득 찼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며칠 만에 나오는 비닐쓰레기의 양이었다. ‘까짓 거 비닐이 쌓여봐야 얼마나 쌓이겠어?’ 했는데 사나흘이면 20L들이 크기의 비닐수거함이 꽉 찼다. 물건마다 비닐이 안 쓰인 데가 없었다.

그나마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아이를 낳은 뒤 쓰레기의 양은 말 그대로 폭증했다. 첫 아이부터 막내까지 모두 천 기저귀를 썼는데 그런대도 일주일간 나오는 기저귀 쓰레기가 엄청났다. 물티슈, 분유통, 과자봉지 등 그밖에 부산물까지. 육아휴직 때는 웬만한 음식은 내가 다 요리해먹었는데도 식재료에서 나오는 쓰레기가 야금야금 모으니 적지 않았다. 음식쓰레기뿐만 아니라 야채를 싼 봉지 등 식재료 포장이 모이자 쓰레기통과 분리수거함을 사흘에 한 번씩 비워도 모자랐다.

아이들이 하나둘 늘어가면서 쓰레기도 당연히 2배, 3배 많아졌다. 아이들은 꼭 뭐든 똑같이 하고 싶어 했다. 떠먹는 요거트 하나를 먹어도 모두 똑같이 먹어야 했고, 장난감 하나를 사도 모두 똑같은 걸 사서 돌려야지 안 그러면 싸움이 났다. 장난감 하나 사면 박스에 고정 플라스틱에 스티로폼, 금속 끈 등 나오는 쓰레기가 왜 그리 많은지. 먹고, 놀고 나면 고스란히 쓰레기가 됐다.

여기에 애들이 크면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만들어오는 ‘공작품’들이 더해졌다. 며칠 전 아이가 “엄마, 어린이집에서 ‘로켓’을 만들었어요”라며 자랑하는데 미안한 말이지만 내 눈에는 ‘페트병 하나와 폐지, 스티로폼으로 이뤄진 재활용 폐기물 모듬’으로 보였다.

어느새 분리수거함이 꽉 차 그 위에 박스며 플라스틱 포장을 탑처럼 쌓는 일이 일상이 됐다. 셋째를 낳고 회사에 복직하면서 일주일에 두 번 청소를 해주시는 가사도우미를 모셨지만 중간 중간 친정엄마가 비워주시지 않으면 분리수거함은 언제 비웠냐는 듯 또 가득 찼다.

지난 달 말 수도권 재활용품 처리업체들이 지난달 공동주택 수거를 거부하면서 우리 아파트도 이달 초까지 며칠간 재활용품 수거를 중단했다. 며칠 새 분리배출장이 있는 아파트 잔디밭에 수북이 쌓인 쓰레기를 보자 ‘내가 저렇게 많은 걸 아무렇지 않게 버리고 살았구나’하는 생각에 새삼 놀랍고 씁쓸했다. 그동안 일회용품의 역습이니, 매립지 한계 도달이니, 쓰레기 관련한 환경 기사를 수차례 쓰면서도 ‘그런가 보다’ 했는데 눈앞에 접하니 그제야 실감이 났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더니.

비록 쓰레기 소동으로 많은 국민들이 불편을 겪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나처럼 자신과 가족이 배출하는 쓰레기를 돌아본 사람들이 많기를 바라본다. 내가 버린 쓰레기는 결국 미래 내 아이들이 자랄 땅과 물을 더럽히게 될 테니까. 마치 봄 새싹이 막 올라와 파아란 아파트 잔디밭에 가득 쌓였던 폐플라스틱들처럼 말이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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