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5시 장슬아 씨(34·여·서울 성동구)는 집 근처 단골식당에 주문 전화를 걸었다. 통화 끝에는 늘 그렇듯 “그릇에 담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유가 있다. 장 씨는 가까운 식당에 음식을 주문할 때면 항상 집에서 쓰는 플라스틱 밀폐용기나 스테인리스 냄비를 들고 간다. 그러면 식당과 장 씨 모두 일회용 그릇을 쓸 필요가 없다. 그는 “그릇을 직접 들고 가면 식당 주인들이 음식을 더 준다. 쓰레기는 줄이고 음식은 더 받으니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장 씨는 20년차 ‘일회용품 프리(free)족’이다. 일상생활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일회용 물티슈 대신 손수건을 빨아 쓰고 종이상자와 비닐은 스케치북과 포장지로 재사용한다. 부부와 세 살 아이로 구성된 장 씨 집에서 한 달간 발생하는 쓰레기는 평균 10L(음식물 제외)가 채 안 된다.
○ 텀블러는 기본, 여행 필수품은 ‘수저’
재활용 쓰레기 수거 대란이 계속되자 집집마다 버리지 못한 비닐이나 플라스틱을 베란다 등에 쌓아놓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일회용품 사용을 최소화해 재활용 쓰레기 발생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를 위해 장 씨처럼 일회용품 프리족으로 생활하는 소비자 10명에게 비결을 물었다. 대부분 거창하거나 복잡하지 않고 생활 속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추천한 건 텀블러와 장바구니 사용. 지난해 10월부터 3개월간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캠페인에 참가한 기세현 씨(68)는 “마음만 먹으면 일회용 컵은 99% 사용하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텀블러와 장바구니를 항상 가방에 넣고 다니는 습관만 있어도 일회용품 사용을 훨씬 줄일 수 있다.
이색 비법도 많았다. 신지선 씨(33·여)는 배달음식 주문을 가급적 피하려 노력한다. 불가피하게 주문할 경우 나무젓가락이나 빨대 등 일회용품을 아예 넣어 보내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여행이나 출장을 갈 때는 집에서 쓰는 수저를 꼭 챙긴다. ‘쓰레기 일기’도 꾸준히 작성한다. 가계부 쓰듯 매일 얼마나 일회용품을 사용했는지 기록하며 사용량을 줄인다.
이 밖에 키친타월 대신 귤껍질을 사용해 기름때를 제거할 수도 있다. 식당에서 물티슈를 달라는 대신 직접 손을 씻거나 손수건에 물을 적셔 사용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 생활 곳곳의 ‘장벽’ 없애야
일회용품 프리족 도전이 쉽지만은 않다. 생활 속 ‘장벽’이 생각보다 높은 탓이다.
8일 오전 11시 김보영 씨(41·여)는 서울 종로구의 한 커피숍을 찾았다. 늘 하던 대로 김 씨는 아메리카노 커피를 주문하며 텀블러를 내밀고 “여기에 담아 달라”고 부탁했다. 20대 초반의 여성 직원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직원은 “커피 용량을 확인해야 할 것 같다”며 텀블러에 물을 담고 버리기를 반복했다. 김 씨는 “텀블러에 담아주는 걸 귀찮다며 눈치를 주거나 머그컵은 설거지 때문에 귀찮아서 그런지 아예 일회용 컵만 가능하다는 카페도 있다”고 말했다.
일회용품 프리족 10명이 ‘공공의 적’으로 꼽은 건 바로 과대포장이다. 임여훈 씨(43·여)는 장을 볼 때 가급적 비닐포장이 많은 물건을 사지 않는다. 하지만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제품들이 있다. 칫솔과 화장품 샴푸 같은 생필품이다. 임 씨는 “결국 기업에 포장을 최소화한 상품을 팔도록 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승희 한국폐기물자원순환학회장은 “상품 포장은 소비자 노력만으로 바꿀 수 없다. 내용물에 비해 포장을 과다하게 하는 상품 생산을 기업 스스로 줄일 수 있도록 하는 강력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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