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의 한 재활용품 선별업체 집하장에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플라스틱 뭉치 사이로 형형색색의 플라스틱 빨대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쓰레기가 컨베이어 벨트로 옮겨지자 인부들이 재활용할 것들을 골라냈다. 하지만 수시로 보이는 빨대는 건드리지 않았다. “모아봐야 얼마 안 되는 빨대를 누가 굳이 골라내겠어요? 처리업체도 받지 않아요.” 업체 대표의 말이다. 플라스틱 빨대들은 일반 폐기물과 섞여 소각장이나 고형연료발전소로 향했다.
유럽 같은 선진국과 스타벅스 등이 플라스틱 빨대 퇴출에 나서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플라스틱 빨대 관리는 엉망이다. 폴리프로필렌(PP) 단일 재질인 빨대는 분리 선별만 하면 거의 대부분 재활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무게가 가벼운 빨대는 비용 대비 경제적 가치가 떨어져 선별 및 처리업체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애초에 분리 선별해 배출하는 커피전문점 빨대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시민들이 버린 대다수의 빨대는 재활용되지 못한 채 쓰레기로 소각되거나 매립된다.
정부도 이런 사실을 알지만 빨대 폐기물 양이 다른 플라스틱 폐기물과 비교해 적고 딱히 대체품이 없다는 이유로 특별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 빨대 사용량은 어마어마하게 늘고 있다.
10일 오후 1시간 반 동안 서울의 한 프랜차이즈 식음료점 2곳에서 사용한 빨대를 세어보니 100개가 넘었다. 스타벅스코리아는 명동역점 한 곳에서만 하루 300∼350개의 빨대가 사용된다고 밝혔다. 1년이면 약 12만 개다. 자원순환사회연대는 서울 1만1000곳의 프랜차이즈 전문점에서 사용하는 빨대만 연간 3억5000만 개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5월 페트와 일회용 컵, 비닐 등을 포함해 대대적인 폐기물 감축 대책을 발표하면서 빨대와 관련한 내용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자원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에서 규정한 ‘사용억제·무상제공금지 대상 일회용품’에도 빨대는 없다. 이 법에서 일회용품으로 규정하면 정부가 각 업종에서 판매와 제공을 제한할 수 있다. 현재 빨대는 법적으로 사용을 규제하거나 재활용을 촉진할 아무런 근거가 없는 셈이다.
최근 정부가 커피전문점, 빵집 등과 맺고 있는 자발적 플라스틱 감축 협약에도 빨대 감축 내용은 없다. 파리바게뜨만이 자체적으로 감축을 약속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폐기물 양이 적다고 해서 빨대 폐기물의 위험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해양파충류 전문가인 국립해양생물자원관 김일훈 연구원은 “빨대 폐기물의 양은 적지만 대부분 재활용되지 않아 자연으로 흘러들 가능성이 높다”며 “2015년 콧구멍에서 12cm 길이 빨대가 나와 충격을 준 바다거북 영상에서 보듯 빨대는 그 뾰족한 모양 때문에 생물에게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국제 동향에 발맞춰 플라스틱 쓰레기 감축의 상징이 된 빨대 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환경부 관계자는 “조만간 빨대 감축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라며 “커피전문점 등과의 자발적 협약을 맺을 때도 빨대 내용을 추가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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