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업계, 병 재활용 대안 찾기 고심
초록색으로 용기 통일한 소주병
하이트진로서 하늘색 병 출시하자 공병 회수-재사용 놓고 업계 갈등
맥주 페트병, 재활용 어려운 소재… 투명한 색으로 하거나 용기 바꿔야
‘이제 친환경을 넘어 필(必)환경 시대다.’
지속 가능한 환경은 더 이상 구호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는 뜻이다. 이 같은 흐름은 산업계에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술이나 음료를 담는 병과 페트병 같은 유통방식의 전환이다. 유색 페트병은 투명하게 만들고, 투명하게 만들 수 없으면 아예 없애는 쪽으로 정책이 바뀌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고민과 갈등도 생긴다. ‘병의 변신’을 놓고 뜨거운 현장 3곳을 소개한다.
○ 속앓이하는 소주병과 맥주 페트병
갈등이 가장 심한 곳은 소주업계다. 하이트진로가 4월 출시한 소주 ‘진로이즈백’의 하늘색 투명한 병이 도마 위에 올랐다. 새 소주의 인기가 높아지자 해당 소주병이 ‘초록병’을 공통으로 사용하기로 한 업계의 약속을 어겼다는 지적이 나왔다.
2009년 소주업계는 360mL 초록색 소주병을 표준용기로 하는 ‘소주공병 공용화 자발적 협약’을 맺었다. 빈병 수거 및 분리에 드는 비용을 줄이고 재사용을 늘리기 위해서다. 당시 가장 많이 유통된 하이트진로의 참이슬 녹색 병을 기준으로 했다. 지난해 판매된 소주병 31억5100만 병 중 ‘표준용기(360mL 초록색)’는 97.3%(30억6700만 병)에 달한다.
‘진로이즈백’의 하늘색 투명한 병은 초록병과 함께 수거된다. 표준용기는 세척해 재사용하고, 다른 용기는 각 업체에 돌려준다. 그러나 롯데주류 측은 “너무 많이 들어와 선별 작업에 지장을 줄 정도”라며 회수된 ‘진로이즈백’ 350만 병을 돌려주지 않고 창고에 쌓아뒀다. 롯데주류 측은 “하이트진로와 별도로 선별 수수료 조율을 하고 있다”면서도 “협약이 깨진 것에 대한 근본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이트진로는 자발적 협약이 법적 강제사항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또 ‘진로이즈백’은 70년대 소주병을 재해석한 ‘뉴트로’ 마케팅을 활용한 상품으로, 초록병을 사용하면 의미가 퇴색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진로이즈백’이 비표준용기를 사용한 첫 사례도 아니라고 반박한다. 지방 소주인 무학의 ‘좋은데이1929’, 금복주의 ‘독도소주’ 등도 비표준병을 사용하고 있다. 환경부는 “양쪽 모두 타당성이 있다”며 신중한 모습이다. 환경부는 빠르면 이번 주 중 업계 의견을 취합해 조율할 방침이다.
소주병 갈등에 이어 주류업계의 고민은 맥주 페트병이다. 올해 말까지 맥주 페트병의 퇴출 계획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갈색 맥주 페트병은 3중막 복합재질로 나일론과 페트(PET)가 혼합돼 있어 재활용이 매우 어렵다. 그러나 맥주 페트병은 생수·음료 페트병과 달리 12월 25일부터 시행될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 개정안에서 제외됐다. 생수·음료 페트병은 투명한 색으로 전환해야 하지만 맥주 페트병은 직사광선이 닿을 경우 품질이 변해서다. 그 대신 연말까지 퇴출 계획을 마련하기로 올해 4월 합의한 상황이다.
주류업계는 “페트병의 가장 큰 장점은 가격 경쟁력인데, 대용량 캔이나 유리병으로 바꾸면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생산라인 구축 비용을 생각하면 퇴출 시점을 최대한 늦추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환경을 위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나 업계 입장에선 페트병의 대안을 찾기가 어렵다”고 털어놨다.
페트병은 국내 맥주 판매량의 16%를 차지한다. 해외에선 맥주를 병과 캔으로만 팔기 때문에 참고할 만한 사례도 없다. 페트병을 투명한 색으로 바꿀 경우 신선도나 성분이 얼마나 변하는지, 어느 정도 기한이면 유통이 가능한지에 대한 연구용역 결과는 12월에 나올 예정이다. 환경부는 조만간 중간보고회를 열어 업계와 내용을 공유할 계획이다.
○ 경제활동과 친환경의 ‘공존’
연말부터 포장재의 재활용 등급기준이 기존의 1∼3등급에서 최우수·우수·보통·어려움으로 세분화되면서 화장품 업계도 난색을 표하고 있다. 화장품 병은 색상이 다양할 뿐 아니라 플라스틱과 유리 등 여러 재질을 혼합해 만들고, 소비자가 일일이 분리 배출하기도 어렵다. 업계에선 화장품 병이 대부분 재활용 ‘어려움’ 등급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화장품 회사 관계자는 “이미지가 중요한 화장품에 ‘어려움’ 표시가 있으면 소비자에게 좋게 받아들여지기 힘들 것”이라 설명했다.
이런 변화가 기업에 새로운 터닝포인트를 줄 것이란 의견도 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소비자도 제대로 된 재활용 정보를 받을 권리가 있다”며 “환경의 중요성이 커지는 시점에 재활용이 잘되면서도 상품의 성분과 이미지를 끌어올리는 방안은 기업이 감수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그린피스코리아는 “유럽에선 과일 표면에 스티커 대신 레이저로 정보를 표기하는 방안까지 만들 정도로 포장재 줄이기에 기업이 나서고 있다”며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일회용품 소비문화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고, 정부와 기업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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