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회사 동료가 제게 부탁을 해서 몇 번 들어줬더니, 이제는 그걸 당연하게 여기고 계속해서 자기 일을 저에게 넘기는 거예요. 스님, 이런 동료에게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한 강연에서 만난 30대 초반의 여성 질문자는 마이크를 잡고 울먹이면서 이렇게 물었다. 참다못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울면서 토로한 것이다.
학교 방학을 맞아 잠시 한국에 들어와 문화적 혜택이 적은 지방 도시를 찾아 마음치유 강연과 고민 상담을 한 지 3년이다.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들은 설령 박사학위가 몇 개 있다 해도, 책을 수천 권 읽었다고 해도 쉽게 풀 수 없는, 철저한 삶의 현장에서 나오는 고민들이다. 그래서 그분들이 나에게는 삶의 스승님들이시다.
나는 그분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 성장하면서 부모님이나 선생님들로부터 착하다는 말을 많이 들으셨나요?” “어, 스님 어떻게 아셨어요? 부모님께서 원하시는 대학의 학과에 들어갔고 지금의 직장도 부모님 말씀대로 했고요.”
아, 이 대답을 듣는 순간 문제의 실마리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 착하다는 말은요, 달리 표현하자면, 본인 스스로가 원하는 것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누르고 상대의 말에 순응해서 잘 들어준다는 의미예요. 하지만 착하다고 해서 본인이 원하는 것이 없거나 자기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니잖아요?” 이에 그 여성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내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었다.
사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내성적이고 유순한 편이라서 착하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 그게 좋기만 한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미국에서 공부를 하면서 그냥 착하기만 한 것은 문제가 있구나 하고 처음 느꼈다. 수업에서 그룹 과제를 내주었을 때 똑똑하고 기가 센 학생들과 함께하다 보니 모두가 기피하는 부분만 내게 계속 맡겨지곤 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그냥 넘어갔지만, 그런 일이 계속되니까 점점 힘들어졌다.
이 고민을 친한 미국인 선배에게 이야기했더니 그는 이렇게 조언했다. “다른 사람보다 본인에게 먼저 착한 사람이 되세요!”
그 순간, 무언가로 뒤통수를 맞은 듯 아차 싶은 생각이 지나갔다. 나 역시 그때까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만을 염려하며 살았다. 나를 아껴준다는 것, 나를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하고 느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개인적인 사연과 함께 그 여성에게 다시 얘기했다. “나의 호의를 너무나 당연시하는 사람을 만날 땐, 그 사람과의 경계선을 긋고 당당하게 말하셔야 해요.”
살다 보면 ‘더이상 당신 마음대로 금 넘어 오지 마!’라고 얘기해야 할 때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좋지만, 그 이전에 나를 아껴주어야 할 의무도 우리에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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