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안풀린다고 “니엄마××”… 손끝까지 험해진 아이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7일 03시 00분


[말이 세상을 바꿉니다]<3부>키보드 위의 언어폭력
10대들의 놀이 ‘온라인 패드립’

《 손가락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속도는 인간이 감정을 느끼는 속도와 비슷하다. 키보드를 통해 표현하는 글은 느낀 감정을 여과 없이 그대로 내뱉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익명성이 더해지면서 ‘키보드 언어’는 일상 언어보다 더 쉽게 상대방의 마음을 찌르는 비수로 돌변한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만난 청소년들은 키보드로 쉽게 표현한 ‘나쁜 말’을 입으로 옮기기 어려워했다. 동아일보 연중기획 ‘말이 세상을 바꿉니다’ 3부에서는 온라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언어폭력 실태를 살펴본다. 》

지난해 봄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마더파더안티카페’가 화제가 됐다. 이 카페는 청소년들이 자신의 부모를 욕하고 비하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일명 ‘패드립’ 카페. 카페에 올라온 글들은 충격적이었다. 휴대전화를 새로 사주지 않는다며 어머니를 ‘엄마 그 미친 ×년(매춘부를 뜻하는 비속어)’이라고 부르거나 부모를 향해 ‘×나 띠껍다’ ‘×나 뒈져라, 보험금 받게’ 등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도 서슴지 않았다. 카페에 올라온 패륜적인 내용의 글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뒤 비난여론 속에 카페는 그해 5월 폐쇄됐다. 마더파더안티카페는 폐쇄됐지만 청소년들의 패드립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 게임하다 막히면 일단 “에미…”

지난달 16일 오후 본보 취재팀은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한 PC방을 찾았다. 10대 남자 아이들 약 15명이 온라인게임을 하고 있었다. 온라인게임은 청소년들이 패드립을 접하게 되는 대표적인 경로다. 게임을 하면서 상대방을 약 올리기 위해 혹은 게임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홧김에 패드립을 하는 것. 아이들에게 부탁해 게임 도중에 패드립이 오가는 모습을 살펴봤다.

오후 9시 15분경 롤플레잉게임 ‘리그오브레전드’를 하던 김모 군(15)이 게임에서 자신의 팀이 불리해지자 채팅창을 통해 같이 게임을 하던 이들에게 ‘에미×아(어머니를 매춘부라고 비하하는 말)’ ‘니엄마××(매춘부를 뜻하는 비속어)’라며 패드립을 했다. 먼저 패드립을 하지는 말라는 취재진의 부탁도 잊은 채 무심코 손가락이 키보드를 두드린 것. 그러자 상대방도 똑같은 패드립으로 대꾸했다. ‘에미×아’가 무슨 뜻이냐는 취재팀의 질문에 김 군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왜 자꾸 패드립을 하느냐는 질문에는 “그냥 한다”며 멋쩍게 웃기만 했다.

친구 노모 군(15)도 옆에서 게임을 하다가 상대방에게 ‘니에미위안부’라는 패드립을 했다. 노 군에게 위안부가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묻자 “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에도 ‘그냥 재미로’ 한다는 것. 이들과 함께 온 장모 군(15)은 게임을 하다가 상대방이 먼저 ‘부모님 돌아가심?’이라는 글을 보내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어케암?(어떻게 알았어?) 그거 내가 10년 전부터 말 안하는 건데’라고 응답했다. 아이들은 자신이 사용한 패드립의 뜻을 묻자 쑥스러운 듯 대답하지 못했다. 나쁜 뜻인 줄은 알지만 그냥 남들이 다 쓰니까 재미로 쓴다고 대답했다.

○ 습관처럼 하는 온라인 패드립

취재팀이 청소년(13∼24세) 1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이 중 83%가 패드립을 알고 있다고 응답했다. 패드립을 아는 청소년(83명) 가운데는 온라인게임을 통해 패드립을 처음 접했다는 아이들이 34.9%(29명)로 가장 많았다. 게임을 하다가 감정이 상했을 때 상대방을 공격하는 무기로 패드립을 사용한다는 것. 친구들과의 일상대화가 28.9%(24명)로 두 번째로 많이 접한 경로였다. 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등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처음 접했다는 응답도 15.7%(13명)였다. 디시인사이드 갤러리는 처음으로 온라인 패드립이 등장한 것으로 알려진 사이트다. 이곳 게시판에 2010년 할머니 영정 사진으로 추정되는 사진과 함께 ‘이제 세뱃돈 2만 원 줄어들었다. ××년이 1월 1일 전에 뒤지고 지랄이여’라는 글이 게재돼 논란을 일으켰다.

설문에서 패드립을 아는 청소년 절반 이상(50.6%·42명)이 게임과 인터넷 커뮤니티 등 온라인에서 처음 패드립을 접했다. 익명성에 기대 키보드를 두드릴 때가 직접 대면하는 것보다 심한 욕설을 더 쉽게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실제로 PC방에서 만난 청소년들은 취재팀 앞에서 글로 썼던 패드립을 말로 옮기는 것을 꺼리는 모습을 보였다.

문제는 청소년들이 이를 하나의 ‘놀이문화’ 정도로 치부하며 일반 욕설을 쓰듯이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패드립은 좀 더 자극적인 ‘센 욕’일 뿐이다. 설문조사에서 패드립을 하는 이유는 상대방에 대한 모독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라는 응답이 41%(34명)로 가장 많았다. 별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쓴다는 응답(34.9%·29명)도 많았다. 백모 양(18)은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말이라서 패드립을 들어도 굳이 기분 나빠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며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단순히 재미있어서 한다는 청소년도 15.7%(13명)나 됐다. 김모 군(18)은 “내가 들으면 기분 나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하면 재미있다”고 말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최강 패드립 모음’ ‘패드립 경향’ 등의 게시글이 끊이지 않고 올라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온라인 패드립, 일상생활까지 침투

온라인에서 키보드를 치며 익힌 패드립은 일상 언어에도 고스란히 스며든다. 취재팀이 만난 청소년 가운데 상당수가 온라인과 일상 언어를 가리지 않고 패드립을 한다고 말했다. 이모 군(18)은 “친구들과 장난을 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너네 아버지 수명 얼마 안 남았네’ 같은 말이나 어머니를 성적으로 비하하는 욕을 하곤 한다”고 말했다. 카카오톡 등 청소년들이 많이 이용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패드립은 빠지지 않는다. 이모 양(13)은 “학교 친구 중 한 명은 집에서 속상한 일이 있을 때마다 병신×나 미친× 등 자기 엄마 욕을 카카오스토리에 올린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모 씨(31·여)는 “얼마 전 버스에서 한 중학생이 아주 예의바른 태도로 어머니와 통화를 한 뒤 전화를 끊자마다 옆에 있던 친구에게 “이 ×는 이래야 좋아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패드립은 언어에 영향을 미치는 데 그치지 않고 패륜적인 행동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지난해 5월 전남 순천에서 발생한 ‘패륜 고교생 동영상’ 사건이 대표적이다. 순천시의 한 노인복지시설에 순천제일고 학생 9명이 징계성 봉사활동을 하러 갔다가 벌인 일이다. 학생들은 몸이 불편한 할머니들을 상대로 “네 이놈, 꿇어라” 등 반말을 하며 조롱하는 내용을 담은 동영상을 찍은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분노했고 결국 학생들은 학교에서 강제전학 등의 중징계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평소 의식 없이 써온 패륜적인 언어에 무감각해지면서 무의식중에 패륜적인 행동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 패드립 ::

패륜과 애드리브를 합친 신조어로 별생각 없이 즉흥적으로 자신의 부모 혹은 조상을 욕하고 비하하는 패륜적 언어행태를 일컫는다. 최근에는 다른 사람의 부모나 조상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행태에도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4∼5년 전부터 온라인에서 시작된 패드립 현상은 청소년들의 실제 언어생활까지 깊숙이 파고들어 하나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았다.

주애진 jaj@donga.com·최혜령 기자

강병규 채널A 기자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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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패드립#언어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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