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강추는 알겠는데 행쇼-엄마크리는 너무 어려워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8일 03시 00분


[말이 세상을 바꿉니다]<4>알 권리 막는 공공언어
세대간 언어장벽 되는 ‘은어’

‘1010235(열렬히 사모합니다)’ ‘222(투덜투덜)’ ‘8255(빨리 와)’….

한때 이런 암호 같은 말들이 우리 언어의 일부가 된 적이 있다. 1990년대 중반 무선호출기, 이른바 ‘삐삐’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 때다. 액정화면에다 숫자만을 표시하던 시절 소통 감각이 뛰어난 이들이 이런 형태의 암호와 같은 말을 만들어 낸 것이다.

대중들은 새로운 매체가 나오면 여기에 맞게 새로운 형태의 언어를 만들어 낸다. 특히 최근에는 휴대전화를 이용한 통신 언어가 새롭게 등장하면서 신조어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어솨요’(어서오세요) ‘비번(비밀번호)’ ‘알바(아르바이트)’ ‘강추(강력히 추천)’ 등의 축약어는 기성세대도 이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말도 적지 않다. 가령 ‘버정에서 기다려, 버카충하고 올게’(버스정류장에서 기다려. 버스카드 충전하고 올게), ‘행쇼’(행복하십쇼), ‘엄마크리’(엄마 때문에 컴퓨터 못 써) 등은 한두 번 들어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새로운 언어들은 세대 간 언어장벽이 되기도 한다. 젊은층이 쓰는 변형된 언어습관을 이해하지 못하면 대화에 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청소년 은어사전’이라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 앱에는 가령 ‘귀요미’라는 말에 대해 ‘(인기 스타의) 팬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은어로 귀여운 이미지를 가진 이를 지칭할 때 사용되는 말. 쉽게 말해 귀염둥이 멤버를 보고 팬들은 귀요미라고 부르고 있음’이라고 설명한다.

또 ‘닥본사’는 닥치고 본방송 사수, ‘부없남’은 부러울 게 없는 남자를 의미한다. 청소년들은 이런 은어를 통해 그들만의 언어세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

물론 청소년들이 우리말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엉터리로 쓰기 위해 이런 축약형 은어를 만들어 낸 것만은 아니다. 박동근 건국대 교수(국어학)는 “통신 언어는 실시간 대화이다 보니 빠른 응답이 필요하다”며 “결국 제한된 시간에 더 많은 대화를 주고받기 위해 새로운 형태의 언어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무료 문자서비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휴대전화의 단문메시지는 80자로 한정돼 있었다. 이 때문에 요금을 아끼기 위해 축약을 하거나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 언어습관이 청소년들 사이에 나타났다. 또 인터넷 글의 홍수 속에서 조금이라도 주목받는 글을 쓰기 위해 과도한 과장이 섞인 언어습관이 더 굳어지기도 했다.

새로운 매체의 등장에 따른 언어 변화를 어느 정도까지 사회가 인정해야 하는지는 새로운 도전 과제다. 박 교수는 “비속어나 차별적인 언어가 아닌 이상 결국 언어를 받아들일지 결정하는 것은 말을 사용하는 언중(言衆)”이라며 “일정 시간이 지나도 언중이 계속 사용한다면 결국 공공언어로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공공언어#언어장벽#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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