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이라는 말 정말 싫어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4일 03시 00분


[잊지 못할 말 한마디]박상(소설가)
필자의 출간 홍보공연 멘토

“전 대충이라는 말 정말 싫어해요.”

박상(소설가)
박상(소설가)
그는 살짝 웃으며 말했지만 뼈있는 목소리였다. 이 말을 듣게 된 배경은 이랬다.

몇 해 전 봄 나는 책을 출간한 뒤 홍보를 위해 서울의 한 대형서점 앞에서 주말 정오에 음악 공연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 곳에서 공연을 한다는 건 멋진 일일 거고, 출판사와 서점 측에서 나 같은 무명작가에게 좋은 기회를 줬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취미 수준인 내 연주 실력이 부담스러웠다. 나는 당시에 록 음악을 하려고 런던에 무작정 날아간 남자 이야기를 썼고, 그 소설의 주제로 만든 자작곡을 ‘때릴’ 예정이었는데 제대로 못할까 봐 걱정이 많았다. 어렵게 잡힌 행사를 부끄럽다고 취소하기도 곤란했다.

내가 비 맞은 생쥐처럼 떨고 있자 출판사에서 한 지원군을 붙여주었다. 연주 지도도 받고, 공연날 함께 협주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는 비평가, 작곡가이자 내가 좋아하는 밴드의 기타리스트이자 보컬리스트, 내 책이 나온 출판사의 편집위원이었다. 나는 그와 친하지만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모든 면에서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는 수준에 달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그만 이렇게 말해버렸다.

“뭐 그냥 대충 하죠.”

그와 둘이서 한창 연습을 한 지 두 시간 만에 뱉은 말이었다. 그도 바쁜데 억지로 시간을 낸 거고, 내가 너무 못 치니까 답답했을 테니, 마음이 쪼들리고 미안한 마음에 너무 애쓰지 말라는 뜻으로 던진 말이었다. 그러자 그가 기타를 내려놓으며 이 글의 첫 문장을 말했다. 나는 붉은악마 셔츠처럼 얼굴이 빨개졌다. 정말 부끄러워서였다. 당시에 대충이라는 말은 어떤 개그맨의 유행어였다. ‘그까이꺼 대충∼.’ 하지만 그것은 대충 해도 잘하는 사람의 ‘릴랙스’를 위한 농담이 될 수는 있어도 나처럼 못하면서 엉성하게 넘어가려는 사람의 선언이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드로잉 강의로 유명한 밥 로스 아저씨도 뭔가 대충 쓱쓱 그리면서 ‘참 쉽죠?’ 하고 말하지만 절대 대충 그리라는 뜻은 아니지 않은가. 그것은 못하는 사람이 던질 농담도 아니고, 인생을 사는 좋은 태도도 아님에 틀림없었다. 대충이라는 어감 자체도 무슨 커다란 벌레 같잖아. 맨정신에 왜 그랬지. 나는 자책하며 집에 돌아와 안 되는 부분을 밤새워 혼자 연습했다.

공연하는 날엔 바람이 몹시 찼다. 야외에 조성된 무대엔 사람들이 통 모이지 않았다. 여러 번 안내방송을 했지만 앉아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우리는 두 명의 관객 앞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는 절대 대충 하지 않았다. 추위에 손가락이 오그라들었지만 최선을 다해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나를 지도해준 선생님도 정말 최고로 멋지게 협주해 주었다. 그것은 단둘뿐인 야외 공연장이든, 몇만 명이 모인 대형 콘서트홀이든 상관없다는 태도의 연주였다. 물론 내 실력의 한계는 어쩔 수 없었지만 끝나고 나서 정신 차려 보니 사람들이 제법 많이 발길을 멈추고 서 있었다.

그 일이 있은 뒤로 나는 대충이라는 낱말을 싫어하며 적극적으로 내외하고 지낸다. 무엇이든 적당히 해선 되는 게 하나도 없다. 그런 태도가 쌓여 있으면 부조리와 후진적 사고의 원인이 되기 쉽다. 철저하게, 열심히, 까다롭게 무언가를 할 때 인생이란 훨씬 세련되고 재미있어진다는 걸 나는 그 한마디 이후로 확실히 깨달아버렸다.


박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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