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수도권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전국 최대의 닭 산지인 경기 포천시에서도 의심신고가 접수돼 방역당국과 농가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위기경보를 ‘주의’에서 ‘경계’로 올렸지만 바이러스 확산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AI 위기경보 발령 기준을 완화한 것이 초동대처를 늦췄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수도권도 뚫렸다
23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전날 포천시 영북면의 산란계(알 낳는 닭) 농장에서 AI 의심신고가 접수됐다. 이 농장에서는 닭 65마리가 폐사했다. 포천은 전국 최대의 닭 산지로 225농가가 1014만 마리의 닭을 사육하고 있다. 20일 경기 양주시의 산란계 농장 닭에서 발견된 AI 바이러스는 고병원성으로 확진됐다. 경기도는 양주와 포천 농장 등 2곳의 닭 25만3000마리를 도살처분하기로 하고 이들 농가에서 가까운 205농가의 닭 257만 마리에 대해서는 이동제한 조치를 내렸다.
충남 아산시 신창면의 산란계 농장에서는 닭 1000마리가 폐사했다. 간이검사 결과 AI 양성반응이 나왔다. 22일에는 충북 음성군 맹동면의 오리농장 2곳에서 AI 의심신고가 접수됐다. 이 농장들은 16일 AI가 발생한 오리농장에서 반경 3km 안에 있다. 지금까지 고병원성 AI로 확진된 지역은 양주시를 비롯해 전남 해남·무안군과 충북 음성군·청주시 등 5곳이다. 포천시와 충남 아산시 등 4곳에선 고병원성 여부를 검사 중이다.
강원 원주시에서는 수리부엉이 1마리에서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발견됐다. 국경을 넘나드는 철새가 아닌 텃새에서 AI가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서상희 충남대 수의학과 교수는 “이미 전국적으로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퍼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농식품부는 위기경보를 경계로 격상시켰다. 위기경보는 관심(평시)-주의(국내 발생)-경계(인접 또는 타 지역 전파)-심각(여러 곳에서 발생, 전국 확산 우려) 등 4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24일에는 가축방역심의회가 열려 전국적인 일시이동중지 명령(Standstill)을 발동할지 결정된다.
한편 정부가 올 6월 위기경보 발령 기준을 완화해 조치가 늦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종전 기준대로면 고병원성 AI가 처음 확진됐을 때 바로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되지만 이번에는 주의 단계에 머물렀다. 이 때문에 야생오리에서 고병원성 AI가 발생한 11일 이후에도 소극적인 대응 수준에 머물렀고 전국적인 일시이동중지 명령도 검토되지 않았다.
○ 농민들 한숨 탄식 울분
23일 전남 영암군 신북면 하수종말처리장에 사료 차량이 들어오자 입구에 설치된 기계가 소독약을 뿜어댔다. 이곳은 인근 해남과 무안 농가에서 AI가 발생한 뒤 운영 중인 축산차량 거점소독시설이었다. 농장을 오간 모든 차량은 AI 확산 방지를 위해 반드시 이곳에서 소독을 해야 한다. 영암군은 이날 시종면 신금대교와 신북면 광암회관에 거점소독시설 두 개를 추가로 설치했다. 농민들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고 선제적 방역을 해 달라”고 요청해서다. 거점소독시설을 하루 운영하는 예산은 100만 원 정도. 그러나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예산 부담 탓에 추가 설치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방역 인력 부족과 부실한 장비도 문제다. 전남의 경우 AI가 발생한 해남을 비롯해 여수 장흥 강진 완도 등 5개 시군에 수의직 공무원이 한 명도 없다. 전국적으로는 지자체 60여 곳에 수의직 공무원이 없다. 애지중지 기르던 오리 7500마리를 도살처분한 A 씨(충북 음성군 맹동면)는 “도살처분을 해도 농민들 손에 쥐여지는 것은 마리당 1000원 정도”라며 “은행 대출이자와 사료비 등을 지불하고 나면 무일푼이나 다름없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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