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살처분이 2700만 마리(28일 0시 기준)를 넘어선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세에 이상진 전 국립축산과학원장(61)은 “한마디로 큰일”이라고 했다.
1977년 축산과학원 연구사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가금 연구의 길을 걸어온 이 전 원장은 가금과장과 원장을 지냈다. 또 한국가금학회 회장, 단국대 초빙석좌교수로도 일하며 연구를 계속했다. 퇴임을 한 지금도 연구회에 몸담고 있거나 산업체 고문으로 일하는 등 ‘현직’을 놓지 않고 있다. 닭에 한평생을 바친 그가 그치지 않는 확산세를 우려할 정도로 현재 AI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에서 이 전 원장이 특히 우려하는 점은 대를 이을 닭이 죽었다는 점이다. 그는 “지금 AI로 도살처분 되는 닭의 대부분이 알을 낳는 ‘산란계’라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닭들 중에 식용 달걀이 아닌 병아리를 키우기 위한 알을 낳는 ‘종자닭’이 상당수 포함돼 있습니다. 살펴보니 우리나라 전체 종자닭 중 40%가 이미 도살처분된 것으로 파악됩니다. 알을 낳을 후손들이 갑자기 천재지변을 겪어 확 줄어든 거죠. 여파가 15개월 이상 갈 수 있고 달걀 품귀 현상도 같은 기간 지속될 수 있습니다.”
이 전 원장은 또 “사상 최대 규모로 도살처분이 되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 침출수나 가스 등 환경 문제가 대두될 수도 있다”며 “사후 관리에도 현명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의 닭 축산업은 AI 같은 전염병 외에는 외부 요인 때문에 생기는 걱정거리가 많지 않은 만큼 이 전 원장은 이번 사태가 근심스럽다. 그는 “축산과학원에 입사한 후 평생을 닭과 함께 지내왔다”며 “그만큼 애정이 있는 동물인데, 하필이면 닭의 해를 앞두고 이런 일이 터졌다”며 더욱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그의 40년 닭 연구 인생을 돌아보면 힘든 일보다는 좋은 일이 더 많았다고 한다. 이 전 원장은 그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자신이 연구해 출원한 특허를 꼽았다.
“음식에 들어있는 오메가6와 오메가3의 성분이 5 대 1이 되면 몸에 가장 좋다는 황금비율이 되는데 달걀에는 이 비율이 30 대 1이 넘었어요. 이 비율을 사료만으로 조절해서 황금비율로 맞춘 ‘오메가3 달걀’로 1992년 축산과학원 설립 사상 두 번째 특허를 따 냈죠. 그 이후로 축산과학원에 특허 경쟁이 붙었습니다.”
그 외에도 이 전 원장이 축산과학원에 근무하던 시절 닭 축산업은 발전기와 안정기를 동시에 겪었다고 한다. 1986년 우루과이라운드 체결로 수입 닭 대란이 올 것에 대비해 국산 닭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여러 조치를 취했다. 닭 축산업은 고기 자급률 70%, 달걀 자급률 100%까지 올라갔다.
닭 덕분에 40년 동안 녹을 받고 가족들과 함께 잘 지낼 수 있었다는 이 전 원장은 앞으로도 닭 산업 발전에 좀 더 이바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는 “현재 가금 사양 표준 개정위원회에 위원장으로 참여하고 있고 계란연구회 회장과 가금 관련 산업체의 자문역도 몇 군데 맡고 있다”며 “앞으로 닭 축산농가의 시설 환경 개선에도 힘을 보탤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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