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대신에 어묵에 소금을 살짝 치면 비슷한 맛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대신 넣긴 했는데 맛이 예전만 못해서 걱정입니다.”
8일 낮, 서울 광진구의 한 분식점에서 1줄에 1500원인 김밥을 주문하자 어묵 두 줄, 시금치, 햄, 당근만 든 ‘반쪽 김밥’을 들고 나온 가게 주인 A 씨가 이렇게 말했다. A 씨는 “계란 값이 비싸 인기 메뉴인 계란튀김은 아예 못 만들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로 닭이 대량 도살처분 되고 그로 인한 가격 인상 탓에 식당가에서 계란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서울 한 대학가에서 일본식 문어구이(다코야키) 노점을 운영하는 B 씨는 “며칠 전까지 옆에서 멀쩡히 계란빵을 팔던 노점이 문을 닫았다”며 “나도 며칠 남지 않았다”고 푸념했다. 지난해 12월 계란 몇 판을 사재기해 뒀지만 얼마 안 가 바닥날 처지라는 것. 서울 강남구의 한 토스트 전문점은 손님이 줄어들 것까지 각오하고 ‘사진에 있는 계란은 제품에 포함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를 내다 걸었다.
계란이 사라진 메뉴는 서울 노량진 수험생들까지 허탈하게 했다. ‘노량진 컵밥’을 즐겨 먹던 김모 씨(19)는 며칠 전 단골집 컵밥에 계란이 빠진 걸 알았다. 김 씨는 “그 대신 햄과 치즈가 더 많이 들어 있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맛이 달랐다”고 말했다. 인터넷에는 “단골 쫄면 집에 갔는데 계란 반 조각을 8분의 1조각으로 줄였더라”, “집 앞 마트에 갔는데 ‘다른 물건을 사지 않고 계란만 구매하는 건 안 된다’고 퇴짜를 놓더라” 같은 경험담이 올라온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계란 여러 개를 한꺼번에 조리하는 일종의 허세인 ‘란수저(계란 금수저)’ 인증 사진이 유행이다. 이날 인스타그램에서 ‘부자 인증’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하니 심지어 계란 6개를 한 프라이팬에 부치는 등 다양한 ‘란수저’ 사진이 수없이 떴다.
계란 가격 급등의 여파는 군부대까지 미쳤다. 계란 전담 공급업체인 농협은 최근 국방부와 협의해 공급량을 30% 이상 줄였다. 경기·충청지역의 일부 군부대는 이달 들어 계란을 거의 공급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유통이 금지된 토종닭 58만 마리를 9일부터 수매하기로 했다. 정부가 토종닭을 수매하는 것은 2009년 이후 처음이다.
송창선 건국대 수의대 교수는 “산란종계가 낳은 병아리가 다시 계란을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데는 최대 1년이 걸린다”며 계란 가격 상승세가 올 한 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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