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같은 닭 묻고… 계란 대란 끝내야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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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달걀 첫 수입하는 홍성학씨
“AI로 닭 20만마리 묻으며 눈물… 양계업자 책임 다하려 수입 결심
달걀 품귀 해결되면 안들여올 것

충남 아산시 신창면 계림농장에서 ‘달걀 낳는 닭(산란계)’을 양팔에 끼고 있는 홍성학 대표. 사진은 2015년 10월 찍은 것으로 홍 대표는 사상 최대 규모의 피해를 내고 있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에 그동안 기르던 닭들을 모두 잃었다. 홍성학 씨 제공
충남 아산시 신창면 계림농장에서 ‘달걀 낳는 닭(산란계)’을 양팔에 끼고 있는 홍성학 대표. 사진은 2015년 10월 찍은 것으로 홍 대표는 사상 최대 규모의 피해를 내고 있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에 그동안 기르던 닭들을 모두 잃었다. 홍성학 씨 제공
 자식같이 키운 닭 20만 마리를 고스란히 땅에 묻었다. 물 대신 산소수를 먹이고 친환경 사료로 애지중지 키운 놈들이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가 여러 차례 주변 농장을 덮쳤지만 버텨냈었다. 이번에도 AI 감염을 막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하지만 결국 실패했고, 농장 운영 13년 만에 처음으로 닭들을 도살처분해야만 했다. 충남 아산시에서 산란계(알 낳는 닭)를 키우는 계림농장 홍성학 대표(52)의 얘기다.

 “닭들을 묻으며 같이 땅에 드러눕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슬픔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납품업체들의 독촉 전화가 빗발쳤기 때문이었다. 방법을 찾았지만 뾰족한 대안은 없었다. 마침내 그가 찾은 해법은 미국에서 계란을 수입하는 것이었다. 그가 국내 수입 계약 1호 사업자가 된 이유다.

 이달 14일 오후 11시, 그의 수입 계란 100t(164만 개)이 한국 땅을 밟는다. 일본 거래업체로부터 소개받은 미국 아이오와 주의 한 농장에서 낳은 계란이다. “자취생들이 계란값이 뛰자 계란 프라이도 맘대로 못 먹는다고 해요. 수입 계란이라도 빨리 들여와 양계업자로서의 본분을 다하고 싶었어요.”

 낙농식품이 귀했던 시절, 초등학교 선생님은 칠판에 젖소와 닭 그림을 그려 보였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인데, 너희가 크면 해볼래?”라던 선생님 말을 기억했던 그는 강원대 축산학과에 들어갔다. 이후 사료회사에 취직해 양계업자들을 대상으로 교육·컨설팅을 했고 그 인연으로 2004년 계림농장을 인수해 양계업에 뛰어들었다.

 꿈을 이뤘지만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는 AI는 두고두고 그를 괴롭혔다. “요새는 계란값이 올라서 문제지만 당시엔 AI가 발병하면 계란값이 폭락했어요.” ‘AI 때문에 계란을 안 먹는다’는 사람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농장을 포기할 수 없었다. 오히려 닭들이 조금이라도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큰돈을 들여 물 정화 시설과 친환경 비료 시설을 갖췄다. 닭들은 품질로 보답했고 2008년 북한 개성공단에도 계란을 납품할 수 있었다.

 “야근하면 다음 날 아침에 출근을 못할 정도로 기력이 떨어지는 북측 근로자들이 있었다고 해요. 하지만 ‘완전식품’인 계란을 먹고 결석률이 떨어졌다는 말을 들을 때 보람을 느꼈죠.”

 홍 대표는 계란 품귀 사태가 마무리되면 수입을 멈출 계획이다. “계란 수급에 숨통이 트이면 우리 농가가 일어설 길을 찾아야죠.” 그는 계란값 급등보다도 산란종계의 절반이 도살처분된 게 더 걱정이라고 했다. 11일 0시 기준으로 전국에서 산란계 2300만 마리(전체의 32.9%), 씨닭인 산란종계는 43만7000마리(전체의 51.5%)가 도살됐다.

 이번에 수입되는 계란은 한국인이 선호하는 갈색 계란이 아닌 흰색 계란이다. 인천공항으로 들어온 계란은 곧장 경기 용인의 냉장창고로 옮겨져 농림축산검역본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검역·검사 절차를 받아야 한다. 이후 수도권 대형마트 등에서 팔릴 예정이다.

 한편 홍보 효과를 노리고 ‘수입산 1호 계란’ 타이틀을 차지하려는 물밑 경쟁도 치열하게 펼쳐졌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수입 계약 1호는 홍 씨다. 하지만 그보다 늦게 수입 계약을 체결한 한 대기업이 12일에 150kg을 국내에 1호로 반입한다. 뒤를 이어 14일에도 한 무역업체가 계란 100t을 홍 씨보다 15시간 정도 앞서 국내에 들여온다.

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달걀#가금류#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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