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고 치료 중이던 환자 A 씨(54·여)가 23일 퇴원했다. 함께 감염됐던 A 씨 남편은 18일 먼저 퇴원했다. A 씨 부부는 지난달 27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방문했다가 메르스에 걸렸다.
A 씨는 입원 중이던 9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보건당국과 병원 측의 부실한 예방조치를 지적하기도 했다. 가까스로 병을 이겨내고 퇴원한 A 씨는 지금 또다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메르스 환자였다’는 주위의 수군거림과 외면, 냉대는 A 씨 부부에게 질병보다 더한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A 씨는 2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퇴원할 날만 기다렸는데, 퇴원 후가 더 힘든지 정말 몰랐다”며 한숨을 쉬었다. A 씨의 절절한 호소를 정리했다.
5일 남편과 함께 보라매병원 음압병실에 입원했다. 1인실 침대에 걸터앉자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입원한 지 3, 4일이 지나면서 TV를 켜지 않았다. 다른 환자들의 사망 소식을 보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카카오톡 메시지는 보지도 않은 채 지워버렸다. 시간은 더 느리게 지나갔다. 평생을 공부하고 일하고 봉사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는 마음에 분노가 일었다. 간절한 기도로 버텼다.
세탁소에 옷을 맡긴 손님들의 전화가 왔다. 병원에 장기간 입원했다고 설명했지만 “개인사정 아니냐”며 막무가내로 화를 냈다. 결국 메르스 치료 중이라고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돌아가셨다는 소문이 있다’는 연락도 왔다. 부부가 갑자기 자취를 감추자 뜬소문이 도는 것이다.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18일 먼저 퇴원한 남편이 직장에 “출근하겠다”고 전화하자 수화기 건너편에서 침묵이 흘렀다. 다행히 사장님은 건강을 완전히 회복한 뒤 출근하도록 해줬다. 남편으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듣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두 번의 검사에서 모두 음성 판정을 받고 23일 드디어 퇴원했다. “의사 선생님 감사합니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병실 밖 공기는 상쾌했다. 그런데 아파트에 도착하자 분위기가 이상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던 이웃이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집에 돌아왔지만 외출을 할 수가 없었다. 사람 만나기가 두려웠다.
이미 동네에선 메르스 환자가 사는 집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엄마, 아빠 당당하시라”고 말했던 아들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같은 동네에 사는 한 동료가 회사에서 “동네 어떤 집에서 메르스 걸렸다니 조심하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아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튿날 세탁소 청소를 하러 나갔다. 고맙게도 보건소에서 소독까지 해주기로 했다. 상가 골목을 지나던 중 친하게 지내던 한 이웃을 봤다. 그는 못 본 척하고 다른 길로 피해갔다. 완치돼서 항체까지 생겼지만 마치 나 자신이 바이러스가 된 것 같았다. 병실 속 고립보다 사회 속 고립이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세탁소 고객들에게 ‘이달 말까지 문을 닫는다’는 안내 문자를 보냈다. ‘다른 데 맡길 테니 찾아갈 날짜 알려주세요’라는 답장이 왔다. 다시 문을 열어도 손님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세탁소 청소를 마치고 집으로 가려는데 옆 가게 사장님이 비타민C 한 통을 건넸다. “이렇게 건강하게 다시 만나서 반갑소. 이거 드시고 건강 회복하시오.” 눈물이 핑 돌았다. “제가 무섭지 않아요?” 멋쩍게 웃었다. 이렇게 따뜻한 위로까진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만 바랄 뿐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