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계기로 현재는 200병상 이상 규모의 병원만 필수로 갖추게 돼 있는 ‘병원 내 감염 방지 시스템’(감염관리실 운영, 전담 인력 배치 등)을 30병상 이상 병원에도 의무화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병원의 감염병 예방 기능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는 긍정적이지만 비현실적인 조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200병상 이상급의 대형 병원도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감염병 관련 기능을 중소형 병원에까지 의무화하는 건 중소형 병원들의 열악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조치라는 것이다.
○ 취지 좋지만 중소 병원의 현실 반영 못 해
28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의료법 일부 개정안’을 이르면 29일 열리는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논의할 예정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메르스 사태를 통해 취약성이 드러난 국내 병원들의 감염 방지 시스템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라며 “대형 병원뿐 아니라 중소형 병원의 감염 관리 수준도 강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중소형 병원들이 의무화되는 감염 관련 기준을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고 운용하는 과정에서 져야 하는 부담이 과도하게 커진다는 점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30병상 수준의 병원은 통상 두세 명, 100병상급 병원은 10명 정도의 의사가 근무한다. 개정안대로 법안이 마련될 경우 100병상 미만의 병원은 대부분 신규 인력 채용 없이는 감염관리실 구성이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병원들의 감염병 관리 가능 확대를 위한 재정 지원 방안을 기획재정부와 협의하기 시작했고, 건강보험 수가 조정을 통한 지원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감염 방지 시스템을 모두 갖추는 데까지 필요한 기간으로 100병상 이상∼200병상 미만 병원은 법 공포 뒤 6개월을, 30병상 이상∼100병상 미만 병원은 법 공포 뒤 1년 6개월을 주기로 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구체적인 지원 규모와 방법 등은 결정되지 않은 상태여서 민간 병원의 부담이 커질 경우 땜질식 처방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수도권 지역의 한 중소형 병원 원장은 “감염병 관련 전담 인력과 조직을 새로 구성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대부분의 중소형 병원은 재정 부담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 보호자 등 출입 제한 근거도 마련
한편 복지위는 의료법 개정 과정에서 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보호자 등에 대해 병원 출입을 제한할 수 있는 법안도 마련할 계획이다.
감염병 예방을 위해 병원장이 환자 보호자와 지인들의 병원 출입과 음식물 반입을 제한할 수 있는 법 조항 마련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이와 관련된 법 조항 자체가 없었다. 병원 측에서 면회 제한 방침을 만들 수 있었지만 사실상 강제성이 없었던 것. 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메르스 사태를 통해 한국식 문병 문화가 얼마나 감염병에 취약한지 드러났기 때문에 관련 법안 마련 작업이 추진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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