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번으로 불린 20일… 원망 버리고 감사하며 고통 이겨내”

[메르스 발생 50일]삼성서울 간호사의 ‘메르스 투병기’
“퇴원하면 병원신뢰회복 도울 것”

“가족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더군요.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메르스 격리병동 근무 중 감염돼 현재 입원 중인 삼성서울병원 간호사 A 씨(35·164번 환자)는 감염 사실을 알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이 병원 격리병동에서 메르스 환자들을 돌보던 A 씨는 지난달 17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A 씨는 “하루 전 감기 증세가 있었지만 그냥 아이에게서 옮은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확진 판정이 나오기까지 하루 동안은 거의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윽고 양성 판정이 나온 뒤 나는 각종 언론에서 164번 환자로 불렸다”며 “혹시 1주일 전에 입원했던 한 젊은 환자에게서 옮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떠올랐다”고 말했다. 당시 이 젊은 환자는 상태가 급속히 안 좋아졌으며 X선 촬영을 해 보니 한쪽 폐가 허옇게 변해 있었다고 한다. A 씨는 “폐렴을 고치려면 속에 든 나쁜 물질을 빨리 뱉어내는 게 중요해 환자의 등을 계속 두드려댔다”며 “그렇게 사투를 벌이는 동안 방역복 어딘가에 환자의 가래가 튀었고 그래서 감염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확진일부터 A 씨는 의료진이 아닌 환자가 돼 자신이 일하던 병원 격리병동에 입원했다. 처음에는 고열과 기침만 나타났지만 이내 폐렴으로 번졌다. 사람에 따라 항바이러스제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A 씨에겐 부작용으로 ‘구토 증상’이 나타났다. 특히 A 씨는 폐렴이 동반돼 3가지 항생제를 동시에 투약하다 보니 구토 증상은 다른 사람보다 훨씬 심했다. A 씨는 “약이 세다 보니 구역질이 계속 났고, 토하다 쓰러져 잠드는 일이 반복됐다”고 전했다.

힘들 때 A 씨의 버팀목은 아이들이었다. A 씨 어머니는 영상전화를 걸어 아들딸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해줬다. 다섯 살짜리 큰아들은 “엄마, 선생님들 말 잘 듣고 꼭 나아서 돌아와”라고 의젓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울고 있으면 세 살배기 딸이 휴대전화 화면에 손을 갖다 대고 눈물 닦아주는 시늉을 했다. A 씨는 가슴이 저렸지만 이 시간만큼은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증상이 완화된 것은 지난달 29일. A 씨는 “한때 ‘왜 하필 나인가’ 하는 원망도 들었다”며 “하지만 되돌릴 수 없는 것은 생각하지 말 것, 나를 치료하는 동료 의료진에게 감사할 것, 병이 나으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생각할 것 등을 되뇌며 정신적인 고통을 이겨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두 차례에 걸친 메르스 검사에서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한 차례 추가 검사를 한 뒤 문제가 없으면 10일경 퇴원할 수 있다.

퇴원을 앞둔 그에게 소감을 물었다. 그는 “간호사 생활이 10년을 넘었지만 바이러스 앞에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처음 느꼈다”며 “퇴원하면 동료들과 함께 무너진 병원의 신뢰를 쌓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