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손가락질’ 생생 집밖 나서기가 두렵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7일 03시 00분


메르스 완치자 ‘끝나지 않은 전쟁’

“뭐, 보건복지부? 너희가 잘못해서 내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에 걸린 거 아니야? 무슨 권리로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그러는데….”

메르스 바이러스는 몸에서 빠져나갔지만 그 상흔은 깊게 남아 있었다. 보건복지부 메르스 심리위기지원단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는 심민영 국립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메르스 완치 판정을 받은 50대 자영업자 A 씨에게 심리 상담을 권했지만 그는 이렇게 흥분하며 상담을 거부했다. 심 전문의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자신을 샌드백 또는 총알받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분노를 수차례 받아주고 나면 차분해지면서 상담에 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A 씨는 심 전문의의 설득 끝에 완치 판정을 받은 지 2주가 지나서야 심리 상담을 시작했다. 아직 정부에 대한 분노감이 남아 있고 불안 증세도 호소하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편견과 질책에 대한 공포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있다. 당연히 생업에도 복귀하지 못했다.

○ 메르스 완치자와 유가족 심리 불안 심각

이처럼 메르스 완치자 중 상당수가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보건복지부 심리위기지원단에 따르면 완치자 106명의 약 절반(50.9%)이 불안 증상을 겪고 있었다. 우울감(41.8%), 불면(36.3%), 분노(25.4%), 슬픔(10.9%), 죄책감(5.4%)을 느끼는 완치자도 상당수였다. 이와 같은 증상이 한 달 이상 계속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확진을 받게 된다.

특히 완치자 9명은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이 심각해 일상생활에 복귀하지 못했으며 의료기관의 전문 치료가 필요한 상태다. 메르스가 세월호 사고, 대구지하철 사고처럼 끔찍한 장면을 직접 목격한 대형 재난 사고가 아닌 점을 감안하면 신종 감염병에 대한 공포가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은 감염병 환자에게 낙인을 찍고 적대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이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동우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가 살아남은 자를 죄인시하는 경향이 워낙 강하다 보니 피해자들이 느끼는 죄책감이 과도한 측면이 있다”며 “감염병에 걸리고 싶어서 걸리는 사람은 없다. 그들도 피해자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완치자뿐 아니라 메르스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의 심리적 압박도 상당했다. 유가족들은 우울 및 절망(53.5%), 불면증(45.2%), 분노(45.2%), 불안(32.9%)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증상 발현 후 1개월 내 치료 필요

전문가들은 초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증상이 수년간 계속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대구지하철 사고 생존자들의 경우 1년 5개월 뒤에도 77%가 PTSD 증상을 보였고 4년 후까지 증상이 계속되는 경우도 12%나 됐다. 심 전문의는 “증상 발현 후 한 달 이전에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절실하다”며 “심리 치료에 대한 데이터를 체계화해 환자들의 조기 치료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배정미 인턴기자 고려대 행정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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