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황교안 국무총리를 통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가 사실상 종식됐다는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한 28일 동아일보는 전문가와 시민들에게 ‘메르스 사태’에 대한 평가와 소회를 물었다. 인터뷰에 응한 전문가와 시민들은 하나같이 “이번 사태는 보건당국의 부적절한 대응 때문에 더욱 확산됐고, 불안감도 커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환자 치료를 담당한 현장 의료진과 시민들의 협조에는 높은 점수를 줬다. ○ 전문가, ‘초기 대응 완전히 실패했다’
전문가들이 메르스 확산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은 건 사태 초기 역학조사와 환자 관리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 무엇보다 접촉자 범위 설정을 제대로 못한 게 치명적이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특히 ‘환자와 2m 이내에서 1시간 이상 접촉해야 감염된다’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기본 가이드라인을 너무 기계적으로 따랐다는 지적이 나왔다.
임현술 동국대 의대 예방의학 교수는 “WHO 기준을 준수하는 건 필요했지만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변수들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했다”며 “이로 인해 초기 감염자들이 어떻게 이동하고 사람들과 접촉했는지 등을 신속하게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호흡기 질환 환자 관리와 관련된 기본 원칙을 지키지 않아 사태를 더 키웠다는 분석도 있었다. 기침과 재채기가 심한 호흡기 환자가 오면 일단 무조건 마스크를 착용하게 한 뒤 최대한 다른 환자들과 분리해야 한다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정용석 경희대 생물학과 교수(바이러스학)는 “호흡기 환자를 관리하는 원칙만 철저히 지켰어도 이른바 ‘슈퍼 전파자’로 불린 환자들이 생겼을 가능성도 크게 줄었을 것”이라며 “보건당국과 의료기관의 철저한 관리가 부족해 일부 환자가 슈퍼 전파자란 오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 시민들, ‘정보공개 너무 늦었다’
시민들은 정부의 메르스 확산과 관련된 정보 공개가 너무 늦어진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회사원인 이현구(가명·32) 씨는 “지역사회 감염이 없고, 공기 감염이 아니라는 설명에도 주변 사람들이 마스크를 많이 쓰고 다녔다”며 “모두들 ‘정부의 발표를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주부인 이혜영 씨(58)는 “국민들에게 처음부터 미리 정보를 제대로 제공했다면 오히려 불필요한 오해도 안 생기고, 적극적으로 예방 조치도 취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보건당국 전문성 강화와 병원 시스템 개선
향후 가장 중요한 개선점으로 전문가들은 보건당국의 전문성 강화를, 시민들은 병원 문화와 시스템 개선을 꼽았다.
특히 시민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병원 입원실과 응급실이 감염에 취약하다고 확인된 만큼 정부와 의료계 차원에서 병원 이용에 대한 ‘국민 안심 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소원 씨(26)는 “감염병과 비감염병으로 응급실을 완전히 분리해 운영하고, 병원 다인실을 줄이는 조치가 취해져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보건당국의 대응 수준이 크게 떨어지는 게 확인된 만큼 전문성 강화에 필요한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병율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실력과 전문성을 갖춘 역학조사 인력들을 충원하고 교육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신종 감염병이 해외로부터 들어와 ‘제2의 메르스’ 사태가 터지는 건 머지않은 미래에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우려했다.
많은 전문가가 조심해야 할 신종 감염병으로 꼽은 건 조류인플루엔자와 뎅기열.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중 H5N1형은 변이가 잦기 때문에 언제든지 심각한 형태로 변형되고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뎅기열의 경우 치사율이 높고, 곤충을 매개로 본격적으로 확산될 땐 사실상 토착화가 된다고 지적했다. 오명돈 서울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지금부터 주요 감염병에 대한 정보 수집·분석 체계를 전방위적으로 갖추고 역학조사 기능을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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