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5월 20일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의 첫 확진자가 나온 뒤 12월 종식 선언을 할 때까지 환자 186명이 발생하고 38명이 목숨을 잃었다. ‘낙타 고기와 낙타유를 먹지 말라’ 등을 예방법이라며 홍보한 정부의 안이한 대응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초래했다. 할리우드 재난영화의 한 장면처럼 대한민국의 일상을 공포감이 짓눌렀다.
▷보건복지부가 217일의 대응 과정에 대한 기록과 평가를 담은 ‘2015 메르스 백서: 메르스로부터 교훈을 얻다!’를 어제 발간했다. ‘사실상 종식’(작년 7월 28일) 선언 이후 1년 만이다. 480여 쪽의 백서는 리더십 부재와 부실한 방역체계를 거듭 확인시켜 준다. “질병을 통제하는 과정에서 모든 책임을 지고 끌고 나가는 리더십을 보여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일할 사람은 없는데 보고하라는 곳은 많았다.” 남 탓도 적지 않다. “지자체 독자적 행동으로 원보이스(one-voice) 원칙이 무너졌다”며 서울시에 혼란의 책임을 떠넘긴 대목도 있다.
▷메르스 종식과 관련해 세계보건기구(WHO) 기준과 다르게 조기 종식을 위해 ‘정무적 판단’을 논의했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기본을 지키지 않아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도 정신을 못 차린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큰일만 터지면 어김없이 정부의 인력과 조직구조 강화 같은 대책이 거론된다. 백서에서도 올 1월 차관급 기관으로 격상된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독립시키는 방안을 중심으로 복지부에 ‘의료기관 감염관리국’ 신설, 장기적으로 ‘지방 공중보건청’ 확대를 제언했다.
▷그렇다면 메르스 사태의 책임은? 감사원의 감사에서 정직 이상 중징계를 받은 사람은 실무급 9명이 전부다. 물러난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은 작년 말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임명됐다. 굳이 ‘메르스 백서’를 공개한 날 복지부는 메르스 치료와 방역에 기여한 39명에 대해 포상을 했다. 뼈저린 반성을 해도 모자랄 판인데 한쪽에서 칭찬 릴레이를 펼친 꼴이다. 오답 노트(백서)라도 제대로 만들어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법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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