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공포’가 또 다시 세계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영국에서는 5년 만에 처음으로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했고, 미국에서도 메르스 의심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메르스 집중 발생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지난달 19~24일 전세계 이슬람교도(무슬림) 약 200만여 명이 한 도시에 모이는 이슬람 최대 연례행사 하즈(Hajj·성지순례)가 열렸던 점을 감안하면 메르스 전염이 더 많은 국가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우디가 ‘메르스 전염의 진원지’라는데 이견이 없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달 18일 발표한 ‘글로벌 메르스 위험성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메르스의 존재가 처음 발견된 2012년부터 올해 6월까지 발생한 메르스 확진 사례 2229건 중 1854건(83%)이 사우디에서 나왔다. 직전 보고서가 발간된 지난해 7월 21일 이후부터 올해 6월말까지 WHO에 보고된 전 세계 189건의 메르스 확진 사례 중 182건(96%)도 사우디에서 보고됐을 정도다. 아랍에이리트(UAE·3건), 오만(3건), 말레이시아(1건) 등 나머지 7건 역시 모두 이슬람국가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현재 메르스 경계령이 내린 국가는 한국을 비롯해 영국, 미국 등 모두 비이슬람 국가다. 가장 최근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한 곳은 영국이다. 사우디 국영항공사 여객기를 타고 영국을 찾은 중동 국적의 한 남성은 지난달 23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영국에서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것은 2013년 이후 처음이며 이 남성은 역대 5번째다. 영국 공중보건국(PHE)은 “중동 거주자인 이 남성은 영국으로 여행을 오기 전 이미 메르스에 감염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남성은 영국 리버풀의 한 호흡기 질병 전문 치료센터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으며 현재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안정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보건 당국은 추가 감염자가 나올 가능성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이 남성과 함께 여객기에 탑승한 승객, 입국 후 접촉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메르스 감염 여부를 조사 중이다. 메르스 잠복기는 약 14일이다.
미국 보건당국 역시 하즈 이후 중동 국가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항공편을 집중적으로 검사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출발해 5일 미국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 도착한 에미레이트항공 여객기에 탑승했던 승객·승무원 중 100여 명이 집단으로 건강이상 증세를 호소한 뒤 이 중 11명이 병원으로 옮겨졌다. 메르스 검사 결과 이들 모두 음성 판정이 나왔으나 3명이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등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들 모두 사우디 하즈 행사에 참석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6일에도 독일 뮌헨, 프랑스 파리를 각각 출발해 필라델피아에 도착한 아메리칸항공 여객기 승객 가운데 12명이 독감 증세를 호소해 현재 메르스 감염 여부를 조사 중이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12명 중 1명이 하즈 참석을 위해 사우디 메카를 찾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에서는 지난해부터 매달 평균 약 16건의 메르스 확진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사우디 보건부에 따르면 지난달에도 성인 남성 8명이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낙타와 직접적인 접촉을 했거나 생낙타유를 마신 사람 6명이 1차 감염을 일으켰고, 2명이 2차 감염됐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박쥐에서 낙타를 거쳐 인간으로 옮겨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우디에서는 메르스 집단 발병 사례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올해 5월 사우디 남부 도시 나지란(Najiran)에서 12명이 집단 발병했는데 생낙타유를 마신 1차 감염자 1명에 의해 가족 11명이 메르스에 집단 감염됐다. 지난해 8월 북서부 고대 도시 도맷 알잔다(Domat Aljanda)에서도 메르스 집단 발병 사례가 발생했는데 이 중 10명이 메르스 환자를 치료하던 병원에서 일하던 의사·간호사 등 의료인이었다. 지난해 사우디에서는 226명이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고, 이들 중 42명이 사망했다. 올해(9월2일 기준)는 94명이 메르스에 감염됐고 이중 11명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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