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확진자 A 씨(61)와 접촉한 뒤 의심환자로 분류된 14명은 16일까지 전원 음성 판정을 받았다. 확산 우려는 잦아드는 모양새다. 하지만 역학 전문가들은 A 씨가 귀국 직후 삼성서울병원이 아닌 동네의원이나 중소병원 응급실로 갔다면 ‘메르스 대유행’이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중소병원들은 여전히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정부가 내놓은 각종 감염병 대책의 사각지대이기 때문이다. 이번 메르스 확진을 계기로 감염병 대책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비용 부담 탓에 설치 꺼려
2015년 메르스 ‘1번 환자’ B 씨(71)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다녀온 뒤 고열로 동네의원 2곳과 종합병원 2곳을 찾았다. 하지만 의료진은 일주일 넘게 B 씨의 사우디아라비아 방문 사실을 몰랐다. 그사이 같은 병실을 쓴 환자 등에게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퍼졌다. 인천국제공항 검역대를 무사통과한 A 씨가 B 씨처럼 동네의원을 찾고 쿠웨이트 방문 사실을 숨겼다면 3년 전과 같은 사태가 반복됐을 수 있었다.
질병관리본부는 환자가 방문국을 숨기는 것을 막기 위해 지난해 9월 ‘해외여행력 정보제공 프로그램(ITS)’을 도입했다. 14일(메르스 잠복기) 이내에 중동에 다녀온 환자가 병·의원을 찾으면 접수 단계부터 경고 메시지를 띄워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ITS를 도입한 지 1년이 지나도록 이를 활용하는 병·의원은 전체 7만4260곳 중 1만5000곳도 되지 않는다. 보건당국의 조사 결과 ITS를 단 한 번이라도 활용한 의료기관의 비율은 △종합병원 79.4% △중소병원 65.4% △동네의원 31.4% △치과의원 6%에 불과했다. 병·의원이 비용 부담 탓에 ITS 설치를 꺼리기 때문이다. 박기준 질병관리본부 검역지원과장은 “ITS가 의료진의 감염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참여가 저조하다”고 말했다.
○ 기침 환자와 일반인 뒤섞인 응급실
A 씨는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뒤 ‘환자분류소’를 거쳐 곧장 음압병상에 격리 조치돼 다른 환자와 접촉하지 않았다. 2015년 ‘14번 환자’가 일반 응급실에 사흘간 입원해 80여 명을 감염시킨 것과 대비된다. 전국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 153곳은 응급의료법에 따라 이 같은 환자분류소를 센터 입구 근처에 두고 있다.
하지만 나머지 일반 응급실 259곳은 환자분류소 설치가 의무사항이 아니다. 2015년 조사에선 설치율이 40%에 미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는 지금도 설치율이 비슷할 것으로 추정한다. 기모란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 교수는 “일반 응급실에선 기침 등 호흡기 증상을 보이는 메르스 의심환자가 다른 환자나 보호자와 뒤섞여 대기하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지적했다. 또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이 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 162곳 중 음압격리실을 설치한 곳은 131곳으로 31곳은 여전히 음압격리실을 두고 있지 않다.
A 씨는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이 때문에 같은 택시를 탄 28명이 관리대상에 포함됐다. 메르스 의심환자는 병원으로 직행하지 말고 먼저 질병관리본부 콜센터(1339)나 보건소로 연락해야 한다. 보건당국이 2015년 이후 줄기차게 홍보해온 내용이다. 하지만 메르스 의심환자 중 병·의원에 내원한 뒤 신고된 비율은 2016년 40.5%에서 지난해 45%로 오히려 늘어났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