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형사2부장)은 이 사건의 정부 책임을 규명하면서 환경부 장관을 지낸 한명숙 전 국무총리(72·수감 중) 등 전직 환경부 고위 관계자를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검찰은 한 전 총리와 강현욱 전 장관(78)을 유력한 조사 대상으로 꼽고 있다.
▼ YS-DJ-盧정부 “유독물 아니다”… 가습기살균제 부실관리 수사 ▼
검찰이 가습기 살균제 제조 판매 업체를 넘어서 정부 역할까지 규명하겠다고 나선 것은 수사를 마무리하기 전에 그동안 제기된 ‘정부 책임론’을 명백히 매듭짓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가습기 살균제가 최초로 제조된 1996년부터 현재까지 20년간 피해 원인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 걸쳐 정부 역할을 규명하는 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정부 관계자들에게 형사책임을 묻기보다 유해 화학물질 관리 실태와 법·제도의 허점을 짚고,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 충실히 조사하는 데 무게를 두겠다는 방침이다. 앞서 정부 부처 공무원들의 과실 유무를 가려 달라는 피해자들과 여론의 요구에 “처벌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다”며 선을 그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옥시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의 가습기 살균제 원료로 쓰인 PHMG는 김영삼 정부 때인 1996년 12월 30일 유공(현 SK케미칼)이 유해성 심사를 신청하면서 처음 환경부에 신고됐다. 환경부는 이듬해인 1997년 3월 15일 관보를 통해 “유독물 해당 안 됨”이라고 고시했다. 두 시기 모두 강현욱 전 장관의 재임기(1996년 12월∼1997년 8월)와 맞물린다. 김대중 정부에서 김명자 전 장관이 재임(1999년 6월∼2003년 2월)하던 2000년 5월에도 환경부는 관보를 통해 PHMG가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는 화학물질이라고 고시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모임은 올해 5월 두 전 장관과 당시 환경부 환경보건관리과·화학물질정책과 담당자들에 대해 책임을 밝혀 달라며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한명숙 전 총리가 8대 환경부 장관(2003년 2월∼2004년 2월)을 지냈던 당시 환경부는 버터플라이이펙트 제품 ‘세퓨’의 원료인 PGH를 2003년 6월 10일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는 화학물질로 고시했다. 같은 해 4월 세퓨 측이 고무·목재 보존제로 쓰겠다며 유해성 심사를 신청했을 때 피부와 경구 독성만 평가한 뒤 ‘유독물이 아니다’라고 판정한 것도 이 시기다. 주요 용도로 ‘스프레이, 에어로졸 제품 등에 첨가’가 명시돼 있었지만 흡입 독성은 시험하지 않은 것. 세퓨는 이 고시 이후 6년 뒤인 2009년 출시됐고 2011년까지 2년여간 판매된 뒤 사망자 14명을 포함한 27명의 피해자를 발생시켰다.
이 같은 원료들은 결국 2011년 질병관리본부에서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 간의 인과관계가 있다는 발표와 당국의 회수 명령이 떨어진 다음 해에야 유독물로 분류됐다. PHMG와 애경 등 제품의 원료가 된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등이 2012년 9월 유독물로 지정됐다.
검찰은 이번 주에 옥시레킷벤키저(옥시·현 RB코리아)의 존 리 전 대표(48·현 구글코리아 사장)를 업무상 과실 치사·치상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할 예정이다. 법조계와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리 전 대표는 공판에 대비하고 참석하는 것이 기업 경영과 병행하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기소를 전후해 구글코리아 사장직에서 물러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회에서는 여야 국정조사 위원들이 정쟁보다는 사안을 엄정하게 규명하는 데 집중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54)는 6일 “단순히 박근혜 정권만 탓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더민주가 집권했던 시절부터 시작된 사안으로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1야당 원내대표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 문제에 자성의 목소리를 낸 셈이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배석준 기자·김치연 인턴기자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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